정부 “해운 2곳중 1곳 살릴것”… 합병보다 양자택일 힘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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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대개조/이제는실행이다]정부, 25일 해운 긴급점검회의→ 채권단 “합병하려면 최소 1년”… 어느쪽 살릴지는 의견 엇갈려
조선 빅3 복잡한 방정식→‘삼성중공업+대우조선’ 합병 거론… “업체 줄이면 中에만 호재” 반론도

해운·조선업은 몸으로 말하면 상처가 너무 심해 썩은 부위다. 그냥 놔두면 상처가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 있어 과감히 수술로 도려내야 한다. 한계 상황에 이른 두 업종을 살리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실현 가능성과 시사점을 정리해 봤다.

○ “한 곳은 반드시 살린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수년 전부터 자산 매각 등 경영 정상화 노력을 기울였지만 장기적인 시장 침체로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이라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모두 살리려다 모두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둘 중 한 곳만 살린다’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는다. 정부가 두 해운사 중 생존가능성이 더 큰 곳에 지원을 집중하고 다른 한 곳은 법정관리로 보내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4일 “해운 구조조정의 원칙은 ①둘 중 한 곳은 가능하면 반드시 살린다 ②다만 지나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을 선택한다면 두 회사 중 어느 곳을 고를 것인가가 관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진해운을 살리고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보내는 방안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최근 현대증권 매각에 성공하면서 기류가 바뀌고 있다. 매각 대금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데다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인하 협상이 순항 중인 현대상선에 비해 한진해운의 상태가 결코 나을 게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현대상선이 자구안 실행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5년 연속 적자로 영업망이 거의 붕괴됐다는 평가가 많다. 한진해운은 부채비율이 현대상선보다 낮고 아직 영업망이 건재해 지원이 이뤄진다면 현대상선보다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적잖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출자전환을 통해 두 회사 모두 KDB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시킨 뒤 산은 주도로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 방안대로 되면 산은은 두 회사의 사업구조를 면밀히 분석한 뒤 겹치는 노선과 사업 분야 등을 재조정할 수 있다. 다만 이 방안이 시행되기 위해선 많은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우선 두 회사가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회사채) 만기 연장에 성공해야 한다. 해외 선주들과 사채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자회사 편입이 불가능하다. 한진해운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차입금 구조가 복잡하고 비협약채권도 많아 사채권 협상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방안은 두 회사를 합병시키는 것이다. 당장 실현 가능한 것이라기보다 구조조정이 진행된 뒤 두 회사 중 한 곳이라도 자금 여유가 생겼을 때 가능한 방식이다. 정부도 지난해 말부터 합병 안을 검토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암 환자 두 명을 붙여 놓는다고 살겠느냐”며 “당장 착수한다 해도 수많은 주주의 동의를 받는 데만 1년도 넘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빅2 체제 전환’ vs ‘자체 구조조정으로 빅3 유지’


조선업은 해운업보다 덩치도 크고 관련 업종 근로자(약 20만 명)도 많아 정부의 고민이 더 깊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3사는 인력 감축을 비롯해 자회사 정리, 비핵심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낸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적인 부실을 일부 털어낸 3사는 올해 1분기 실적이 호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업계와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1000억 원대, 삼성중공업은 300억∼400억 원대의 흑자가 예상된다. 조 단위의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도 190억∼400억 원대로 적자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에선 조선 3사가 지난해에만 6조 원 가까이 해양플랜트 부실을 반영한 만큼 더 이상의 대규모 적자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3사가 올해 1분기에 수주한 게 고작 4척밖에 되지 않는 등 일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2, 3년 내 작업장이 빌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주 가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3사 체제의 존속은 불가능하고 정부가 거제에 위치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합병시킨 뒤 현대중공업과 ‘빅2’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제 코가 석자’인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생각이 없어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우조선해양을 해외에 매각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조선업은 원천 기술로 세계시장에서 1등인 업종이라 대우조선해양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정리하면 가장 좋아할 곳은 중국”이라며 “중국이 핵심 인력과 기술들을 자본을 앞세워 통째로 흡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전문가는 빅3 조선사가 자체 구조조정을 강하게 해나가면서 조선업 호황이 올 때까지 버티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은창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조선소들을 통폐합한 일본식 구조조정이 당장 생존에는 도움을 줬지만 이 과정에서 생산 규모가 줄고 인재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정작 호황기에 접어든 후 한국에 조선 주도권을 빼앗기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김성규·정임수 기자
#해운#정부#합병#양자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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