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기업 채용 반 토막, ‘일자리 정부’의 역설[광화문에서/정임수]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사흘 뒤 헬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깜짝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즉각 “공사 소속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보고했다. 2020년 들어 정부 주도로 이를 밀어붙이자 기존 정규직 직원과 청년들의 집단 반발이 이어졌다.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엔 “채용 문이 더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글이 쏟아졌다. 역차별을 성토한 청년들의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2019년 149명이던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지난해 7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인천공항공사만이 아니다. 주요 공기업 35곳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최근 2년 새 47% 급감했다. 2019년엔 1만1238명을 뽑았는데 2020년 7631명, 지난해 5917명으로 뚝뚝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영향도 크지만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사실상 채용을 중단한 한국마사회, 강원랜드를 제외하곤 비정규직 제로에 앞장서온 공기업에서 채용 부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4616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철도공사의 신규 채용은 2019년 3964명에서 지난해 1426명으로 64%나 줄었다. 비정규직 566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전력의 채용도 41% 감소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무더기로, 무리하게 전환하다 보니 조직이 비대해지고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신규 인력을 뽑을 여력이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 일자리만 사라진 게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최근 5년 새 18만 명가량 줄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전체 임직원 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같은 기간 미국(49만 명), 일본(34만 명), 독일(25만 명) 등에서 제조업 취업자가 늘어난 것과 딴판이다. 자동차·조선업 구조조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문 정부가 밀어붙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일률적인 주52시간제, 기업규제 3법 등으로 기업들의 손발이 묶인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이것이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 놓고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 정부의 현주소다. 이런데도 대통령일자리수석은 최근 “(코로나19 이전 고용을 100으로 봤을 때) 지금 102%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천문학적 일자리 예산으로 ‘관제 알바’를 늘려 고용통계는 분칠했을지 몰라도 사상 최대로 급증한 ‘구직단념자’는 막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포기하고 실업자 집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지난해 63만 명에 육박한다. 고용 참사의 민낯은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대선 후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은 구체적 로드맵도 없이 ‘300만 개 일자리 창출’,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같은 지르기식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기업 족쇄를 푸는 규제 혁파와 고용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계 표 계산에만 매달린다면 제대로 된 일자리는 요원하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2022-02-15 03:00 
[광화문에서/정임수]또 등장한 ‘오천피’ 공약, 불확실성 제거가 정치 역할“열 받는다, 울고 싶다.” 요즘 주식 관련 유튜브나 인터넷 카페를 보면 이런 우울한 말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7월 3,305로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코스피가 3,000 선에 안착하지 못하고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스피 상승률은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19위로 꼴찌 수준이다. 2020년 1위에서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성적에 문재인 대통령은 입을 닫았다. 1년 전 신년사에서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이 밝다”고 자랑한 것과 딴판이다. 대통령이 외면하는 사이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겠다며 앞다퉈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새해 증시 개장식에도 나란히 참석했다. 대선 후보가 증시 개장식을 찾은 건 처음이다. 이 후보의 공약은 ‘코스피 5,000 달성’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주가 조작을 엄벌하고 불법 이익을 환수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선진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맞불을 놨다.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대주주 등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사람 모두 1000만 명 넘는 ‘개미 투자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손봐 시장을 띄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막상 증권가에서는 이들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선 때마다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후보들의 구애와 주가 달성 공약이 반복된 탓이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우증권 본사를 방문해 “내년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다. 임기 5년 내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고 자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며 “5년 내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연 건 지난해 1월이다. 2,000에서 3,000이 되는 데 13년 5개월이 걸렸다.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용두사미로 끝난 건 국내 주력 업종인 반도체의 업황 둔화 우려, 인플레이션 위기, 글로벌 공급망 마비, 미국의 긴축 움직임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새해에도 이런 불안 요인이 계속되면서 경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이 올해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삼천피를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데도 여야 대선 주자들은 경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위기를 가중시킬 ‘돈 풀기’ 선심 공약이나 ‘오천피’(코스피 5,000) 같은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주가는 경제의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삼천피를 사천피, 오천피로 끌어올리려면 경제 기초체력을 탄탄히 하고 기업의 족쇄를 걷어내는 게 먼저가 돼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2022-01-04 03:00 
[광화문에서/정임수]집값 올려놓고 대출 조이면 전세·대출난민 어디로 가나3호 인터넷은행 토스뱅크는 지난주 출범하자마자 대출 영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올해 신용대출 총량(5000억 원)을 정해줬는데, 출범 나흘 만에 60%를 소진한 것이다. 시중은행 가계대출도 연말로 갈수록 ‘셧다운’(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주요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은 7일 현재 4.97%로, 금융당국이 제시한 목표치(5∼6%)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미 목표치를 넘겼거나 한도에 육박한 은행들이 잇달아 대출을 제한하면서 ‘대출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만큼 정부가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 1800조 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미국의 긴축 움직임, 국내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금융 불안 등과 맞물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위험이 됐다. 대출을 억제해 집값 상승 등 자산시장 거품을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계산도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의 총량 규제 방식은 대출 수요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묻지 마’식 돈줄 조이기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대출자들이 찾는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등 제2금융권도 당국의 압박에 대출 축소에 나섰다. 대부업체도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을 조이고 있다. 여기서도 돈을 구하지 못한 취약계층은 고금리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출 총량은 잡힐지 몰라도 대출의 질은 더 악화되는 셈이다. 당국이 올해 5∼6%, 내년 4%로 정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대출 증가율이 6%를 밑돌았던 적은 2004, 2012, 2018, 2019년 네 번뿐이다. 여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인데 전 금융권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대출을 틀어막는 게 올바른 해법인지도 의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대출에 의존했던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궁지에 몰리고 있다. 가계빚 급증의 주된 원인은 저금리와 집값 급등이다. 주택 공급은 외면한 채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물리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고 이에 비례해 대출 총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그 책임을 대출자들에게 떠넘긴다는 원성이 쏟아지는 이유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정부가 집값은 안 잡고 ‘대출 사다리’마저 걷어차느냐” “집값 급등으로 ‘벼락거지’ 만들더니 전세대출마저 막혀 월세로 나앉게 생겼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순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한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발표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이 잡히지 않는 한 대출 수요는 줄어들기 힘들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대출 규제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와 양도소득세 한시적 인하를 통한 공급 확대 등 입체적인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무차별적인 대출 총량 관리보다는 주거비 부담이 급증한 무주택자와 긴급 생활자금이 필요한 서민, 자영업자 등을 배려하는 정교한 ‘핀셋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2021-10-1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