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벤츠와 현대자동차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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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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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산업부 차장
석동빈 산업부 차장
메르세데스벤츠가 스웨덴의 북부 도시인 아리에플로그에서 주최하는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 윈터 스포팅 어드밴스트’라는 긴 이름의 체험 프로그램을 최근 취재하고 왔다. AMG는 벤츠의 자회사로 벤츠의 최고 성능 모델만 전담해서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자동차 ‘환자’들을 위한 운전기술 향상 교육인데 두께 70cm의 얼음과 눈이 덮인 드넓은 호수 위에 만들어놓은 빙상 서킷에서 3박 4일간 마음껏 달려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제공되는 차량은 500마력을 넘나드는 벤츠의 AMG 모델들로 미끄럼을 막아주는 안전장치까지 모두 해제하고 빙판길을 달려야 하는 상당히 과격한 행사여서 보통 사람에겐 정신 나간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참가비도 3740유로(약 580만 원)에 달해 참가자를 모으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스웨덴에 도착한 순간 기우였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참석 가능 인원 30명이 모두 찼을 뿐만 아니라 이번 겨울에 마련된 7차례 프로그램이 이미 몇 개월 전에 마감됐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온 50대 독일인은 올해로 4년째 계속 참석하고 있고 다른 참석자 상당수도 처음이 아니었다. 현재 AMG 모델을 가진 고객도 많았다. 한마디로 AMG와 운전에 미쳐버린 사람들이었다.

벤츠는 이 같은 드라이빙 프로그램을 미국과 유럽 15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독일 본사 근처에 있는 초대형 박물관에서부터 옛날 차들을 경험할 수 있는 클래식센터까지 다양한 고객참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벤츠를 보고 만지고 경험하면서 현재의 고객은 더욱 충성도를 높이고 잠재고객에게는 확신을 심어줘 브랜드 가치와 경영성과를 동시에 높이는 셈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은 과거 하늘처럼 높아만 보였던 벤츠가 저만치 앞서 가는 뒷모습이 보일 정도로는 접근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행사는 기술 외적인 부분은 아직 까마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벤츠처럼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유산(遺産)을 만들기 위해 자동차회사들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혼다는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지시로 1990년 완전 알루미늄 차체의 슈퍼카 ‘NSX’를 시장에 내놓아 당시 자동차업계를 놀라게 했다. NSX는 혼다에 1000억 원 넘는 손실을 준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동차업계에서 혼다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닛산이 현재 판매 중인 ‘GT-R’도 포르셰의 고성능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으며 닛산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GT-R도 닛산에 돈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세계 자동차 역사에도 남을 이런 기념비적인 자동차들은 당장은 수익을 올려주지 못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더 큰 성과를 준다.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를 발표한 이후 최근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해 인기를 끈 ‘카마로’와 슈퍼카급 성능인 ‘콜벳’ 등 유명한 쉐보레 모델들을 광고에 동원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중이다. 이로써 GM대우자동차 이름으로는 한 번도 넘지 못했던 국내 판매 10% 벽을 돌파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려 주가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가 이런 자동차도 만들었다’고 내놓을 유산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당장은 잘 팔릴 자동차를 만들어 수익을 낼지는 몰라도 기억에 남는 차를 만들지 못하면 미래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법이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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