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M&A 레이스… 하나銀 - KB ‘메가뱅크’ 도약 각축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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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은행 지도를 바꿀 은행권 인수합병(M&A)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방아쇠는 ‘금융계의 심판’인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선수들의 예상보다 빨리 당겼다.

진 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 방식으로 다른 금융회사와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최적의 짝짓기 조합’을 완성하려는 각 은행 수뇌부의 두뇌싸움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됐다.

누가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이번 레이스는 금융당국의 의중, 주주들의 이해관계, 각 금융그룹의 경영전략을 비롯한 각종 변수가 많아 스피드스케이팅보다는 끝까지 승자를 점치기 어려운 쇼트트랙 경기에 가까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은행권 재편 작업은 우리금융 민영화에서 시작돼 외환은행 인수전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책은행의 틀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나선 산업은행도 몸집 불리기에 뛰어들 태세여서 M&A 구도가 복잡하게 형성되고 있다. 국내 은행권 판도는 1990년대 중반까지 자리 잡았던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체제에서 외환위기 이후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의 ‘빅4’로 바뀐 데 이어 이번 M&A 경쟁의 결과에 따라 1, 2개의 초대형 메가뱅크와 다수의 중형은행으로 새롭게 짜일 가능성이 크다.

또 보험 증권 캐피털 등 각종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금융지주회사들의 대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전체 금융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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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M&A의 1단계 시나리오는 우리금융의 ‘주인 찾기’에서 출발한다. 금융당국이 상반기에 민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아직 구체적인 매각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외환은행보다 먼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금융은 자산 기준으로 국내 최대의 금융지주회사여서 은행 M&A 시장에서는 2004년 소주시장의 매물로 나왔던 진로와 같은 존재다. 누가 인수하든 확고부동한 1등으로 도약할 수 있어 군침을 흘리는 곳도 많다. 일찌감치 국내 은행 인수에 관심이 없다며 발을 뺀 신한금융그룹을 제외할 때 합병 파트너로는 하나금융과 KB금융그룹이 꼽힌다.

특히 ‘우리+하나’의 조합은 은행권 안팎에서 회자되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지주회사끼리만 합치면 각각의 자회사들은 자연스레 통합지주회사의 ‘우산’ 밑으로 들어오게 되므로 합병 방식이 간단하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의지도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기업은행에도 밀릴 정도로 사세(社勢)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어 M&A를 통해 장기적인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태다.

양측이 합병할 경우 주력 계열사인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총자산은 373조7000억 원(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불어나 2위인 국민은행(267조1000억 원)을 100조 원 이상 차로 따돌리게 된다. 시장점유율도 31.6%로 국민은행(22.6%)보다 9%포인트 높다. 은행 간 통합 방식은 옛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의 합병 사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두 은행은 합병 이후에도 한동안 각자의 브랜드를 유지하는 ‘듀얼 뱅크(Dual Bank)’ 체제로 운영되다가 통합은행으로 거듭났다. 김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고려대 경영학과)인 점은 인수경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장점인 동시에 ‘특혜 논란’을 촉발할 수 있는 부담요인이기도 하다.

‘우리+KB’의 조합도 합병 후 시너지 효과를 고려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나리오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기업금융에 강한 반면 KB는 소매금융에 특화돼 있는 데다 중복 점포를 통폐합할 때 비용 절감 효과도 커서 합병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합치면 자산규모가 495조8000억 원으로 세계 50위권의 초대형 금융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정부가 보유한 금융회사와 최근 관치(官治)금융 논란의 진원지인 KB금융 간의 짝짓기라는 점이 부담스럽지만 ‘글로벌 메가뱅크’를 출현시킬 카드라는 점이 금융당국으로서는 매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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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의 주인 찾기가 끝나면 곧바로 외환은행 인수전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금융을 놓쳐 1등이 되지 못한 쪽으로서는 엇비슷한 규모는 돼야 경쟁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KB금융이 우리금융과의 짝짓기에 실패한 뒤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국민+외환’ 통합은행의 자산은 367조5000억 원으로 ‘하나+우리’의 총자산 373조7000억 원을 바짝 뒤쫓을 수 있다. 소매금융 전문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떨치지 못한 KB금융은 해외영업과 외환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환은행에 구애(求愛)의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낸 바 있다.

반대로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합병에 고배를 마신 뒤 외환은행을 사들이면 통합은행의 총자산은 245조4000억 원으로 늘긴 하지만 ‘국민+우리’(495조8000억 원) 규모의 절반에 해당하는 중형은행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비전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은행 간 M&A를 통해 국내 은행산업은 글로벌 사업을 지향하는 1, 2개의 초대형 은행과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2, 3개의 중형은행, 그리고 다수의 지역은행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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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변수는 사실상 국내 유일의 투자은행(IB)인 산업은행의 행보다.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국책은행에서 민간은행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 산은은 ‘내년 국내 증시 상장, 후년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목표로 몸값을 올리기 위해 다른 어떤 은행보다 M&A에 적극적이다. 전국 46곳에 불과한 지점망으로는 1000개 안팎의 영업점을 보유한 다른 은행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신 기반을 늘리기 위한 은행 인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동안 국내 은행 인수를 검토하다가 여의치 않자 태국의 시암씨티은행에 눈독을 들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수전 막판에 ‘볼커 룰(Volcker Rule)’로 불리는 미국의 금융규제 방안이 나와 포기했지만 M&A 의지마저 접은 것은 아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제기됐던 ‘기업은행+산업은행’ 합병모델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당시에는 국책은행의 덩치를 지나치게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반대에 부닥쳤지만 오히려 수신기반을 확충함으로써 민영화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은행권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은행과 계열사들을 기은지주회사로 묶은 뒤 산은지주회사와 합병하고, 각 계열사 간 통합으로 몸집을 키우면 민영화를 하더라도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외환은행을 합병 파트너로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다시 나온다. 처음 외환은행 인수론이 제기됐을 때 “국책은행이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먹튀’를 도와주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무산됐지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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