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이후 중국 주시할 필요…한국경제 잘 뛰지만 고용이 문제”

  • Array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유럽부흥개발은행 버글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에릭 버글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권의 재정위기가 한국으로 전염될 여지는 없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은 재정위기보다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전영한 기자
유럽부흥개발은행의 에릭 버글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권의 재정위기가 한국으로 전염될 여지는 없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은 재정위기보다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전영한 기자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위기는 단순히 국가채무가 많아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의 신뢰 추락, 국가경쟁력 약화 등 각 나라에 잠재된 문제가 곪아터진 결과입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에릭 버글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PIGS 국가들이 과도한 재정지출로 위기를 맞았다는 일반적인 시각을 넘어서 버글로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랜 기간 누적돼 온 각국의 구조적 결함에 근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유럽 각국의 경제 여건에 정통한 그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주최한 ‘동유럽 체제전환 국가의 경제적 성과’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과거 그리스 정부는 재정 통계를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뢰도가 떨어져 은행조차 돈을 구하기 힘든 상태가 됐죠. 포르투갈은 자국의 주요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등 국가경쟁력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스페인은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수준이었죠. PIGS 국가마다 각각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던 셈입니다.”

버글로프 박사는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그리스 등이 재정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해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철밥통’을 지키려는 공공 부문의 강한 반발을 고려하면 개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권의 재정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과 관련해 그는 “위기의 전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한국과 중국이 빠른 속도로 회복한 데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은 편이어서 PIGS 국가와 같은 문제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경기부양 조치를 종료하는 출구전략도 아시아 국가들이 먼저 추진한 뒤 미국, 서유럽, 동유럽 국가 순으로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전체 시장에 영향을 주고 단기간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점에선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부 재정이 악화된 만큼 두 사안을 따로 떼서 보긴 어렵지만 경제 주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만 놓고 볼 때 지금의 남유럽발(發) 위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때처럼 혼돈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버글로프 박사는 “한국경제는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지금의 고용 상황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1월 실업자가 121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고용이 회복되지 않으면 개개인의 살림살이가 힘들어져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남유럽 위기에 이어 다음 위기는 어디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중국경제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버글로프 박사는 “지금까지 중국 같은 대규모 인구의 경제는 없었으며 중국의 경기부양과 과열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다”며 위기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불확실성이 큰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