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잃어버린 에너지를 찾아서]<上>젊은이들이 희망

  • 입력 2006년 8월 28일 03시 00분


“내 사업해야죠”서울 송파구 잠실동 홍익상가 내 ‘총각네 야채가게’의 총각 직원들의 환한 모습. 학생군사훈련단(ROTC) 장교에서 전역하자마자 6월 말 이곳에 입사한 정다운 씨(가운데)는 이곳에서 3년간 일을 배워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꿈이다. 이훈구 기자
“내 사업해야죠”
서울 송파구 잠실동 홍익상가 내 ‘총각네 야채가게’의 총각 직원들의 환한 모습. 학생군사훈련단(ROTC) 장교에서 전역하자마자 6월 말 이곳에 입사한 정다운 씨(가운데)는 이곳에서 3년간 일을 배워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꿈이다. 이훈구 기자
#장면 1 “어머님, 오늘은 복숭아가 정말 달아요. 얼마나 담아드릴까요.”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 홍익상가 안 ‘총각네 야채가게’. 직원 정다운(26) 씨가 가게에 들어선 50대 여성에게 다가서며 살갑게 말을 건넨다.

대학을 마치고 학생군사훈련단(ROTC) 장교로 복무한 뒤 올해 6월 말 전역해 처음 가진 직장.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일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목소리에 활력이 넘친다.

“대기업에 취직한 ROTC 동기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걱정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기서 3년 정도 일을 배우고 ‘내 장사’를 시작할 겁니다.”

#장면 2 “직장에서 경쟁하는 데 지쳤어요. 미래도 안 보이고….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25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의 공무원시험 준비학원에서 만난 김모(29) 씨.

광화문 주변 정보기술(IT)업체에 다니는 김 씨는 올해 4월부터 이 학원의 야간반에 등록해 퇴근 후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강의를 자주 빼먹게 돼 올해 말에는 아예 회사 생활을 접고 시험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빛과 그림자’다.

요즘 우리 경제의 활력 저하를 염려하는 전문가들 중에서는 그 원인을 근로자, 특히 청년층 근로자들의 ‘도전정신’ 상실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안정적 일자리는 줄지만 갈수록 지원자는 늘어난다. 고(高)성장, 우량 중소기업은 쓸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 ‘안전 직장’ 찾아 젊은이들 엑소더스

신한은행은 몇 년 전부터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집단 토론을 크게 강화해 사람 됨됨이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가벼운 술자리에 데려가 지원자의 ‘속’을 떠보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이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으로 옮기는 일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 은행 양진규 인사부 부부장은 “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직장과 직업에 대해 진정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공기업 공채에는 다른 기업에서 옮겨온 유능한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상반기(1∼6월)에 채용한 신입사원 140명 중 38명, 대한주택공사에 2004년 이후 입사한 652명 가운데 300여 명은 다른 기업에서 옮겨왔다.

또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현재 청년층 비(非)경제활동인구 521만3000명 가운데 ‘취업 준비자’는 53만7000명. 이들 중 40.6%인 21만8000명은 7, 9급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사 등 공무원직 진출 준비자를 합하면 취업 준비자의 48.5%(26만 명)가 안정적 일자리를 찾는 데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 외환위기와 청년실업이 부른 ‘안전 지상주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사회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외환위기 이후 찾아온 극심한 청년 실업과 고용 안정성의 급격한 하락 때문에 젊은이들이 인생의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는 것.

반면 젊은이들이 취업을 꿈꾸는 ‘괜찮은’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 결과 30대 대기업 계열사, 공기업, 금융회사의 종업원 수는 1997년 157만9000명에서 2004년 130만5000명으로 27만4000명 감소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선임연구원은 “수십 년간 ‘고속 주행’을 하다 외환위기라는 ‘대형사고’를 만난 뒤 한국사회에서는 ‘고위험-고수익’ 모델이 금기시되고 있다”면서 “더 큰 꿈을 추구하려면 근로자건 기업이건 모험을 감수하는 도전 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 기업인들, 창의적 열정 갖춘 젊은이를 찾는다

랑콤 샤넬 바디샵 막스&스펜서 등 세계적인 화장품회사의 콤팩트에 들어가는 화장 솔의 60% 정도를 만들어 내 이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에프에스코리아.

이 회사는 학력 차이를 신입사원 채용, 연봉 등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이 회사 황재광(50) 사장은 “대학에서 쓸데없는 것만 잔뜩 배운 젊은이는 필요 없다”면서 “창의적 발상과 열정만 있다면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1993년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야채 행상을 시작해 13년 만에 34개 점포를 거느린 ‘총각네 야채가게’ 프랜차이즈를 키워낸 이영석(38) 대표.

그는 틈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부모도 못 준 비전이나 가치를 회사가 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기 비전은 스스로 찾으라는 주문이다.

이 대표는 “확실한 목표의식과 창의성만 있으면 젊은이가 도전할 만한 일은 어디에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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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불…한국 근로의욕 60개국중 37위▼

1970, 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끈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이 최근 급격히 떨어진 상황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경쟁국에 비해서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한성대 박영범(경제학) 교수가 펴낸 ‘국제비교 노동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노동부문의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IMD 지수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의 ‘근로자 의욕(worker motivation)’은 10점 만점에 5.62점. 조사 대상 60개국 중 37위에 그쳤다.

IMD 지수 중 ‘근로자 의욕’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한국은 최근 5년간 30∼40위권에 머물렀다. 2004년에는 42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박 교수는 “우리의 사회적 환경은 열심히 일하고 돈 버는 데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당분간 근로자 의욕 지수의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빨간불…경제지표 줄줄이 악화 예고▼

29일부터 다음 주초까지 발표될 주요 경제지표들이 줄줄이 악화될 것으로 보여 각 경제주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일 발표될 ‘7월 산업 활동 동향’에선 전년 동월대비 산업생산 증가율이 5%를 넘을지가 관심. 자동차 파업과 집중호우에 따른 생산 위축이 겹쳐 지난해 6월(3.7%) 이후 최저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어 31일 발표될 ‘7월 서비스업 활동 동향’에선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이 6월(4.5%)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1분기(1∼3월) 6.1%, 2분기(4∼6월) 5.3%로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시 떨어지면 추세적인 하락인지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다음 달 초 발표되는 수출입 동향이나 소비자물가 등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앞으로 나올 지표들이 7월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 자동차에 이어 발전노조도 파업을 경고하고 있고 예년보다 훨씬 긴 추석연휴도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

현대경제연구원은 27일 내년 세계 경기를 전망하면서 “미국발(發) 글로벌 경기 하강이 가시화되면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적 구조와 내수경기 부진을 고려할 때 내년엔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경제부▽

박중현 기자(팀장) sanjuck@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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