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개인진료기록’ 보험에 활용해도 될까

  • 입력 2005년 8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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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에 사는 안모(여) 씨는 올해 6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생명보험회사 두 곳에 보험을 들어둬 치료비 걱정은 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안 씨에게 “혹시 과거에 병력(病歷)이 있지 않느냐”며 보험금 지급을 미뤘다. 병을 숨긴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한 뒤 최근 5년간 병원에 가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서야 안 씨는 간신히 보험금을 탈 수 있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은 이런 보험금 분쟁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전체 국민 97%의 진료기록을 축적해 놓은 건보공단의 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병력이 있는 사람은 보험료가 오르거나 아예 보험가입이 거절되는 사태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 끊이지 않는 ‘고지의무 위반’ 다툼

부산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박화열(朴和烈·61) 씨는 5월 여행사를 통해 중국 관광을 갔다가 낭패를 봤다. 음식이 소화되지 않아 일정을 앞당겨 귀국해 진단을 받아보니 ‘십이지장 천공’이었다.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여행사가 단체 여행자보험에 든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박 씨는 650만 원의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3월 가벼운 위염으로 사흘간 입원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박 씨는 “짧은 여행자보험을 들 때도 고지의무를 꼬치꼬치 지키란 말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규제개혁기획단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민원은 4040건. 보험회사 조사결과 지급이 거절된 보험금은 10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보험 관련 민원의 대부분은 보험계약 당시 고지의무(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에 따른 것이다. 보험계약을 할 때 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과거 병력을 보험사에 알리지 않으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보험사는 이러한 고지의무 위반도 보험사기로 간주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기는 2003년 9315건, 606억 원에서 지난해 1만6513건, 1290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고지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 주는 보험모집인이 거의 없는 데다 과거 병력을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문제는 계속된다.

○ 공공 진료정보 보험활용 논란

규제개혁기획단의 방안은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건보공단의 진료기록을 떼어 이를 보험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되풀이되는 분쟁을 막고 사회적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규제개혁기획단 이성구(李星求) 국장은 “건보공단이 공권력을 이용해 모은 정보를 독점할 이유가 없다”며 “보험 가입자가 스스로 결정해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趙連行) 사무국장도 “완벽한 국민 건강정보를 사장시켜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 상품의 기초가 되는 위험률 통계를 낼 수 없어 일본이나 유럽 등의 통계를 가져와 위험률을 산출한 뒤 20% 정도 높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건보공단 이평수(李平洙) 상무는 “진료정보를 제출하지 않는 가입자에 대해서는 보험사들이 과거에 큰 병을 앓았다고 간주해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험료를 높일 것”이라며 “부작용이 눈에 보이는데도 공공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원석(朴元錫) 사회인권국장은 “질병정보는 사생활의 본질적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며 “건보공단이 진료명세를 공개한다면 정보 수집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제개혁기획단 이 국장은 “정부부처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리지만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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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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