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영 쉽지않네”…게시판 지식 제공자에 보상 역효과

  • 입력 2005년 4월 4일 0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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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식경영 시스템’을 도입한 중소기업 A사.

다른 회사들처럼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면 돈으로 보상하거나 승진할 때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처음 몇 개월은 잘 흘러갔다. 한 번에 수십 건의 지식을 올려 짭짤한 소득을 챙기는 ‘스타’도 등장했다. 하지만 1년쯤 지나자 매달 올라오는 글은 고작 몇 건으로 줄었다.

지식이 21세기 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국내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지식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업무에서 쌓인 노하우를 다른 조직원과 나눠 가져 전체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 하지만 성공 사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김영걸(金永杰) 교수팀은 최근 ‘지식공유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결정 요인’이라는 논문에서 경제적 보상이 오히려 조직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경영정보시스템(MIS) 분야에서 세계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학술지 ‘MIS쿼터리’ 3월호에 실렸다.

▽‘한국형’ 지식경영=지금까지 지식공유를 위해선 경제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김 교수팀은 최근 4년간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 국내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증적인 연구를 벌인 결과 눈에 보이는 보상이 지식공유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이끌어내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개인 중심적인 서구에 비해 한국은 조직의 의견이나 규범이 개인의 의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국내에선 최고경영자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보상을 내걸고 드라이브를 거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마일리지보다 중요한 것=대웅제약은 지난해 지식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직접적인 보상은 무시했다. 그 대신 전국 수백 명의 영업사원 가운데 최고 수준의 고수(高手) 5명을 뽑아 ‘비법’을 전수하는 동아리를 5개 만들었다. 동아리 회원들은 1개월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났고 평소에는 e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입사한 지 1, 2년밖에 안 된 동아리 회원들의 영업 실적이 100∼200% 늘어난 것. 처음엔 시큰둥하던 영업소장들이 부하 사원들을 동아리에 가입시켜 달라고 줄을 서기도 했다. 지식공유가 구체적인 실적으로 이어지면서 성공한 사례다.

▽지식경영은 ‘마라톤’=지식경영을 가장 잘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SK그룹은 고 최종현(崔鍾賢) 회장 시절인 1978년 SKMS(SK경영시스템)를 만들었다. 20년도 더 된 규범에는 지식경영과 협업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원천이라고 명문화돼 있다. 조직원들은 입사하면 지식공유를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문화에 젖어들게 된다.

김 교수는 “지식경영은 100m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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