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한국기업 모시기 ‘두얼굴’]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는 기업들

  • 입력 2004년 11월 3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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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후 우리 기업 최대의 해외직접투자 대상국으로 떠오른 중국. 새로운 ‘황금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 국내 기업들이 이들 국가에 앞 다퉈 뛰어드는 이유는 매력적인 투자환경과 엄청난 잠재시장 때문이다. 국내의 어려워진 투자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현지에서 패배의 쓴잔을 드는 기업도 늘고 있다. 투자를 철회하고 떠나는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치는 차갑기만 하다. ‘두 얼굴의 정부’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 낮은 임금을 찾아 어쩔 수 없이 국내를 떠난 중소기업들의 가시밭길은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현지 취재를 통해 해외로 떠난 우리 기업들의 애환을 살펴봤다.》

중국 광둥(廣東)성 푸산(佛山)시에 있는 포스코 현지법인 이재원(李在源) 부사장은 최근 푸산시 당국으로부터 “지분 6.2%를 되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포스코 현지법인이 올해 들어 250만달러의 순익을 달성하는 등 정상궤도에 오른 만큼 시 정부가 더 이상 지분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부사장은 “98년 처음 진출할 때는 시 정부가 지분을 요구해 다소 오해를 했다”고 털어놨다. 시 정부가 일정 지분을 가지려 했던 것은 무엇보다 책임감을 갖고 포스코 현지법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푸산시는 공장 설립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직접 처리했다. 2개월마다 한번씩 공장을 방문해 애로점을 꼼꼼히 메모했다. 공장 입구의 도로 신호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하루 만에 시정했다.

차이나드림 좇아…
지난달 26일 KOTRA 주최로 중국 상하이 푸둥 신국제박람센터에서 열린 한국상품종합전시회.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국내 194개 업체가 중국의 합작 파트너와 바이어를 찾아 이 행사에 참가했다. 하지만 대 중국 투자에는 빛과 그늘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냉철한 자세가 요구된다는 게 현지 기업인들의 조언이다. 상하이=배극인기자

▽한국 기업을 모셔라=함정오(咸正午) KOTRA 광저우(廣州) 무역관장은 “광둥성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중국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15%에 이른다”며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화교 자본의 텃밭이었던 이곳까지 최근 한국 기업의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저우에 자리 잡은 코스닥 등록업체인 DM테크는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고용 인력을 600명에서 절반 수준인 320명까지 자유롭게 조절하고 있다.

이 회사 공양식(孔良植) 경영지원팀장은 “액정표시장치(LCD), DVD플레이어 등 생산제품이 경기를 많이 타는데 지방정부가 고용인력 조절을 적극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鎭·한국의 구에 해당) 당국에만 가도 세관, 소방국, 공안국, 공상국, 은행 등이 모두 입주해 있어 필요한 행정절차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며 “미비된 서류는 자신들이 보완해 주기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세계시장을 향한 투자거점, 상하이(上海)도 이에 못지않다.

국내 모 은행 상하이지점장은 “현재 우리 산업 하나 외환 신한 등 국내 5개 은행이 상하이에서 중국계 은행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은행들이 삼성이나 포스코 등 한국의 우량 기업에 대해 런던 금융시장 초우량 은행간의 단기 금리인 리보(LIBOR)를 제시하며 대출 세일에 나서고 있다는 것.

‘한국 기업 모시기’는 인근 베트남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하노이에 자리 잡은 오리온하넬의 김영식(金永植) 법인장. 그는 지난달 가동을 시작한 TV브라운관 제2생산라인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한국 본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 은행 어디에서도 공장 증설에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 없었다. 현지 파트너인 하넬측의 응웬칵민 사장이 ‘우리를 믿어 달라’며 베트남계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오리온하넬은 올해 1억1300만달러의 매출과 300만달러의 순이익을 내다보고 있다. 생산라인도 조만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이다.

▽울고 나오는 기업들=이처럼 한국 기업 모시기에 적극적인 중국이지만 떠나려는 기업이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차가운 얼굴’로 돌변한다.

국내 A제과업체는 90년대 초 광둥성에 350만달러를 투자해 합작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얼마 후 합작 파트너는 설비, 판매망 모두 수준 이하인 ‘빈껍데기’로 드러났다.

적자를 지속하던 A업체는 결국 중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 철수 대가는 가혹했다. 지방정부는 과거 무관세 및 감세 혜택을 줬던 모든 거래에 대해 100% 소급해 세금을 물렸다. 철수 절차에 걸린 시간도 1년반 이상이 소요됐다.

결국 이 업체는 당초 설비투자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27만달러만 회수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일수록 어려움은 크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특히 베이징 등 북쪽의 지방정부가 처음 투자할 때와 달리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철수하려 하면 그동안 눈감아 줬던 규제를 한꺼번에 들이댄다”고 털어놨다. 그는 “중국은 들어갈 때 칙사 대접을 받지만 나올 때는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이중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은 공무원들이 당장 인센티브가 있는 투자유치 실적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급속도로 기술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중국의 자신감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을 이끄는 상하이 푸둥의 장장(長江) 하이테크 개발구가 외국인 투자기업의 기술 수준 및 첨단성에 따라 감세(減稅) 등 각종 혜택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이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광저우(중국)·하노이(베트남)=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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