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재영/FTA 한시가 급하다

  • 입력 2003년 12월 2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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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그저 우울할 따름이다. 정치권의 스산한 모습도 그렇지만 멀쩡한 젊은이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웬만한 직장의 취업 경쟁률이 수백 대 1이다. 기업은 더 이상 한국에서는 견디기 어렵다며 중국으로, 동남아로 국적을 옮기고 있다. 도시 근로자들의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도를 넘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만드는 것이 되었다. 도대체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인가.

▼해외시장 열려야 일자리도 생겨 ▼

생산자는 상품이 잘 팔리면 증산을 하고, 더 잘 팔리면 설비를 늘리고 근로자를 더 고용한다. 그러면 일자리가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시장을 찾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남북분단 이후 한국은 해외시장에 먼저 눈을 떴고, 북한은 자립경제를 추구한 것이 오늘의 남북한 경제력의 차이를 만들지 않았던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해외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세계 각국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국가들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회원국 간에만 시장을 공유하고 비회원국을 배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255개의 FTA가 체결돼 이중 184개가 발효됐다. 2005년까지는 약 250개의 FTA 발효가 예상되고, 전 세계 교역량의 51%가 그들에 의해 이뤄질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한국 몽골 등 4개국만 FTA가 없다. 무역의존도가 국민총생산의 70%에 이르는 한국으로서 해외시장의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정부가 어려운 협상과정을 거쳐 국회에 상정시킨 한-칠레 FTA의 비준이 일부 농민들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차일피일 시간만 흘러가는 사이에 우리의 대(對)칠레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위에서 4위로 전락했고, 휴대전화 판매도 급감하고 있다. 더구나 칠레는 30여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우리 수출품의 수입선은 계속 다른 나라로 바뀌게 될 상황이다.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탓에 FTA 비준이 지연될수록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할 것임은 어두운 밤에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농림부문에 대한 투·융자 119조원, 농림부문 채무상환, 단기회전자금, 경상비 등 비(非)투·융자 47조원, 교육 복지 행자부 등의 농림사업 20조원 등 모두 186조원의 지원 규모를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제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1992년 이후 정부가 수십조원의 예산을 농촌에 투입했으나 도농간 소득격차는 95년 95%에서 2002년 73%로 더 벌어졌으며 농가부채는 95년 이후 2배가 늘었고 농촌의 빈곤가구는 도시 빈곤가구(4%)의 3배인 12%에 이르는 등 결과는 참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이 있기에 이를 거울삼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농촌을 살리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농민의 입장에서도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촌을 재건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 투쟁도 중요하지만 실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제안을 계기로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에서 한-칠레 FTA 국회 비준을 찬성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추측된다. 국회는 FTA 특별기금 등의 형태로 조건부 비준을 함으로써 농민들에게 농촌 재건의 확실한 보장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칠레FTA 농촌재건 기회로 ▼

더 이상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국회나 농민 지도자들의 리더십 발휘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때다. 경제도 살리고, 농민도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한-칠레 FTA를 이번 회기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사회가 쇠퇴하는 최대의 원인 중 하나는 ‘자기 결정 능력의 상실’이라고 말했다. 국가나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궁극적 요인은 언제나 내부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토인비 역사철학의 핵심이다. 소신을 갖고 결정하고 강력히 추진하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정재영 성균관대 부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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