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머니' 아파트 떠나 빌딩-땅으로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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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뱅커 A씨는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1일 오전 그는 지방 한 도시의 임야 1만여평를 보고 왔다. 한 고객이 ‘계약을 할까 하는데 수익성을 한번 점검해 달라’고 부탁을 해 온 것. 고속도로에서 가깝고 택지지구도 조성된다 하니 꽤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지 중개업자들도 ‘서울 손님들의 발길이 잦다’고 했다.》

상경하자마자 그가 찾은 곳은 한 백화점이 주관한 재테크 강연회. 40여명의 ‘강남 아줌마’들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강연 내용은 ‘10·29대책 중 양도세 및 보유세 부분 해설’. 청중은 중과세를 피할 수 있고 증여도 쉬운 투자용 땅에 남다른 관심을 나타냈다. 1일부터 시작돼 매주 월요일 여섯 번 진행되는 이 강연회의 주제는 △세금 △부동산경매(각 2회) △토지 투자요령 △부동산시장 전망(각 1회).

A씨의 바쁜 스케줄에서 스마트 머니(Smart Money·시장 기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채고 반응하는 큰손 투자자)의 초조감과 분주한 방향 타진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스마트 머니가 주택시장을 떠나고 있다. 1가구 다주택자를 겨냥한 ‘10·29대책’의 영향이다.

어디로 가고 있나? 프라이빗 뱅커와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투자자금이 20억원 이상인 고객은 서울 강남권 빌딩으로, 10억원 이하 고객은 토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10·29 이후 서울 강남권(지하철 2호선 삼성역 강남역 양재역 인근)에서 20억∼30억원 나가는 오피스빌딩에는 대기 수요자가 넘치고 있다. 오렌지공인중개소 이춘모 대표는 “연간 임대수익이 투자금액의 6% 이상이면 단번에 계약이 이뤄지고 5%짜리에도 줄이 길다”고 전했다.

오피스빌딩 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는 배경은 임대 수요 회복세다. 부동산서비스업체 샘스에 따르면 강남권 소형(연면적 2000평 미만) 빌딩 공실률은 9월 3.6%에서 11월 중순 1.7%로 급락했다. 11월 중순 현재 서울 전체의 평균 공실률 6.4%보다 훨씬 낮다.

이 덕분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임대 관리도 한결 쉬워졌다. 30년 동안 봉제공장을 운영해 오다 지난해 60억원짜리 빌딩을 사들인 B씨의 경우 첫 달 임대수익률이 3.8%에 그쳤다. 한 임대관리업체의 도움을 받아 입주업체를 깐깐하게 선별한 결과 최근 임대수익률이 9%로 올라갔다. 이 대표는 “적금 이자 이상의 임대수익을 꾸준히 가져다주는 것 이외에 이른바 ‘다운계약서’(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거래가격을 낮춰 쓴 계약서)를 아파트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도 오피스나 상가 투자의 인기 요인”이라고 귀띔했다.

오피스빌딩이나 상가에 비해 토지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은 한걸음 늦다. 다만 토지공사가 조성한 택지지구 내 단독주택지 분양에서는 최근 최고 200 대 1의 청약경쟁이 불붙고 있다. 또한 수도권 경매 토지의 낙찰가율이 지난달 연중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토지시장은 본격적인 활황을 맞았다기보다는 스마트 머니의 투자처 물색이 한창인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진단.

닥터아파트 오윤섭 대표는 “앞으로 부동산 투자의 대세는 분산투자가 될 것”이라면서도 “아파트에 발목이 잡힌 다가구 보유자들이 일부 물건을 처분해 현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이런 흐름이 본격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전국적으로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을 돌며 치고 빠지는 작전세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면서 “‘상가나 땅이 움직인다’는 얘기를 듣고 개인 투자자들이 섣불리 따라 나섰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고 충고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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