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현장기자진단]'제조물책임법' 위기이자 기회

  • 입력 2002년 4월 8일 17시 36분


김승진 / 경제부
김승진 / 경제부
“운 나빠 걸리는 소송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아요. 모두 대비를 했다고 하지만 정작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보험에 가입한 정도거든요. 일 터졌을 때 막는 일만 신경쓰는 것 같아요.”

7월 시행될 제조물책임법(PL법)과 관련해 기업들에게 컨설팅을 하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PL법은 제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제조업체가 배상해야 하는 법. 연구소와 상품 기획실부터 고객 상담실까지 기업활동의 전 과정에 관련된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은 물론, 소송이 걸렸을 때 보험으로 배상금 부담만 덜면 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배상금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제품과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손상이죠. 반면 소비자 ‘안전’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만약의 경우 문제가 생겨도 책임감 있게 대응하면 기업 이미지가 좋아질 수 있어요. PL법은 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죠.”

문제를 숨기는 데 급급하고 미적미적 대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꼭 PL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위기 관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다.

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투입돼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존슨앤존슨은 즉각 이 사실을 공표하고 10만 달러의 범인 현상금을 걸었다. 타이레놀은 전량 수거했다. 단기적으로 수백만달러를 손해보고 시장점유율도 뚝 떨어졌지만 결국 존슨앤존슨은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책임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안약을 만드는 일본의 산텐제약은 2000년 6월 2000만엔을 송금하지 않으면 벤젠을 넣은 안약을 배포하겠다는 협박장을 받았다. 회사측은 이를 쉬쉬하지 않고 즉시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의 제품을 모두 회수, 폐기토록 해 250만개의 안약이 1주일만에 회수됐다. 10일만에 범인이 체포됐다. 이후 소비자들의 격려 전화와 e메일이 쇄도했다.

석유업체 엑슨은 위기관리 실패로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사례. 89년 엑슨의 유조선이 알래스카 인근에서 좌초해 바다에 원유가 유출됐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해’로 보도될 정도의 큰 사고였지만 이를 숨기다가 1주일이 지나서야 로울 회장이 첫 공식언급을 했다. 현지 프레스센터를 통신시설이 열악한 곳에 설치하고 직급이 낮은 임원만 파견해 사실을 은폐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 주의회는 원유에 대한 세금과 원유 유출사고 배상액을 올렸다.

김승진 경제부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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