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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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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건 사람이 전체 공급 물량의 17%에 해당하는 아파트 300가구를 통째로 계약하고 싶으니 분양가를 일부 할인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M사장은 “계약금만 90억원에 이르는 ‘큰 건’으로 선뜻 뿌리치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나중에 다른 계약자와 형평성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거절하고 말았다”며 “최근 들어 이런 제안을 해오는 전화가 심심찮게 온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에 여윳돈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시중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금리가 6% 안팎으로 떨어진데다 종합주가가 600선 밑을 맴돌면서 부동산이 대체 투자 상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실제 은행 총예금은 1월 2년만에 처음으로 8936억원이 빠져나간데 이어 지난달에도 24일까지 증가액이 전년 동기 대비 36%에 그친 4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증시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1월에 2조6594억원이 늘었던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24일까지 1291억원 증가에 그쳤다.
신한은행 강남지점 한영진과장은 “요즘 고액 자산가들이 돈 굴릴 데가 없다고 하소연하며 ‘부동산 투자는 어떠냐’고 물어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자투리땅을 이용한 임대주택 건설 전문업체인 ‘수목건축’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도 요즘 5억∼10억원 정도의 여윳돈으로 임대주택사업을 해보고 싶다며 거의 매일 2, 3명씩 찾아온다.
이 회사 서용식사장은 “최근 이 정도 자금으로 임대사업을 하겠다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1년전 평당 600만원이던 강남 주택가의 땅값이 평당 700만∼75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매물이 없어 쩔쩔 맨다”고 말했다.
부동산 도매시장으로 불리는 법원경매시장을 찾는 투자자도 최근 30% 이상 급증하면서 경매가 열리는 법정들도 크게 붐비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그동안 최고 인기를 누려 왔던 아파트보다는 고정적인 임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슈퍼마켓 등이 들어선 근린상가나 도심 주택가 고급 빌라, 토지 등의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
2월 서울의 법원경매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보면 근린상가는 66.2%로 전달의 62.3%보다 3.9% 포인트나 올라갔다. 아파트는 81.0%로 전달(80.2%)보다 0.8% 포인트 오른데 그쳤다.
부동산개발전문업체 ‘해밀컨설팅’의 황용천사장은 “은행 정기예금금리가 6%에 머물면서 물가 상승분과 세금 등을 제하면 거의 남는 수익이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주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 고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의 매력에 주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그는 또 “100만원 정도면 도심 대형 빌딩에 투자하고 임대수입 등을 나눠 갖는 부동산투자신탁회사(리츠·REITs)가 정부의 계획대로 7월경 도입되면 시중 여윳돈의 부동산 시장 유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재성·박현진기자>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