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2000 새희망2001]중소 건설사 부사장의 회한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33분


올해로 건설업계에 몸담은 지 12년째인 중소건설업체 삼보종합건설의 성진수(成眞洙·46) 부사장. 그는 올 한해를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보냈다.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자부심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직원을 한 사람도 내보내지 않았다.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로 휘청거리고 동아건설 등 내로라 하는 건설사조차 넘어가는 상황에서 적자를 내지 않은 것도 꿈만 같다.

성부사장은 매출도 줄었지만 회사가 설립 20여년 만에 올해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로 분양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씁쓸하다고 말했다. 건설 경기가 위축되면서 일반 주택 소비자들이 중소 건설업체의 이름으로 시공 분양하는 경우 분양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에 ‘도급’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

중소 주택건설업체 3500여개사가 가입해 있는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의 부회장이기도 한 성부사장은 “회원사 중 올해 집 한 채라도 공사를 한 업체는 100개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중 자신의 브랜드로 시공 분양한 회사는 그나마 20개도 채 안된다.

중소기업이 땅을 사서 시공허가를 받은 후 공사와 분양은 S, L건설 등 대기업에 도급을 주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난 것. 이처럼 대기업에 도급을 주는 경우 직접 분양할 때보다 이윤이 15∼50% 가량 줄어들지만 그나마 일감을 잃지 않으려면 울며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는 실정. “건설경기 침체도 문제지만 이같은 ‘건설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가속화가 사실 더 무섭습니다.”

그는 “개점 휴업 상태인 중소업체들은 인원 감축, 사무실 축소와 이전, 자본금 털어쓰기 등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으나 내년에도 지금처럼 불황이 계속되면 살아남을 중소업체가 몇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주택건설업체 중 87%가 내년에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97년 이후에만도 600여개사가 부도 파산했다.

그는 올해 초 난개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건설경기가 급랭한 후 하반기에는 금융불안과 내수 위축, 고유가 등이 전반적인 경기를 위축시켜 건설경기가 완전히 한겨울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부동산 신탁제도(리츠)도 일부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업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그는 ‘내년에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솔직한 심정을 나타냈다.

그는 대부분의 주택건설업체가 안고 있는 대한주택보증의 융자금 상환부담이 줄어들지 않으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택건설업체의 58%가 원금은커녕 융자금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사장은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도 있지 않겠느냐”며 “그래서 올 한해가 빨리 지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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