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산업 도전과 응전]풀린 빗장…'광야'에 선 한국車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미국 포드의 대우차 인수가 확실해지면서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규모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대우차가 해외에 매각되는 것은 단순히 시장을 개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산업 자체가 글로벌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산업을 시작한지 30여년 만에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 등으로 최근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글로벌 제휴 움직임에서 소외돼왔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이제 위기이자 기회를 맞고 있다.

▽글로벌 체제 본격 편입〓올초 삼성차가 프랑스 르노에 인수된 것은 한국 자동차산업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해외의 완성차 업체가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니라 생산과 판매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위해 진출한 첫 케이스였다.

르노측은 삼성차의 SM5를 계속 생산하는 것은 물론 소형차에서 레저용 차량(RV)에 이르기까지 풀라인업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발표, 국내 자동차 업계를 긴장시켰다.

대우차 입찰 직전 현대차가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생산과 기술 이전 등 전 부문에 걸쳐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은 국내업체가 적극적으로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에 손을 내민 케이스. 국내 1위업체인 현대지만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우차 해외매각은 삼성차 매각이나 현대-다임러의 제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메가톤급 위력을 갖고 있다. 대우차는 지난해 쌍용차를 포함해 100만여대를 생산, 국내 시장에서 30% 가량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업체.

포드가 대우를 인수하게 되면 현대차에 이어 단숨에 국내 2위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포드의 인지도와 기술력으로 볼 때 점유율을 10% 이상 더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국내업체와 외국업체가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서 겨루게 되는 셈이다.다만 포드가 단시일 내에 자사 모델을 투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입찰에 참여하면서 고용 유지와 부품 업계 육성, 생산라인과 브랜드 유지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현재 대우의 차종을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

▽위기이자 기회〓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국내에 외국차가 수입되는 게 아니라 이제 외국차가 직접 개발 조립 생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국내업체의 글로벌 체제 편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업계는 규모를 대형화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환경과 안전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쌍용 삼성 대우 등 현대를 제외한 업체들이 연달아 무너진 것도 이같은 추세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세계적인 ‘제휴’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부장은 “해외 업체의 진출로 세계 최첨단 기술을 공급받아 국내 기업이 세계화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수입차에 대한 정서적인 거부감이 줄어들면서 수입차 시장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업체들의 진출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포드, 르노가 각각 인수한 미쓰비시 마쓰다 닛산이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부터 렉서스 모델을 중심으로 한국 진출을 선언한 도요타의 움직임도 바빠질 전망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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