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금시장(上)]꽉 막힌 돈줄…'부도괴담' 흉흉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자금시장에 ‘부도괴담(怪談)’이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다음달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9조1000억원의 회사채 만기물량 상환을 눈앞에 두고 있어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투신사는 회사채를 상환하라고 다그치고 있고 단기자금 젖줄인 종금사는 ‘절름발이’ 신세로 전락해 기업자금줄을 더욱 조이고 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는 이러다간 ‘판이 깨진다’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16일 10조원 규모의 채권펀드를 구성하고 은행들에 기업어음을 사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읽게 한다. 긴박한 자금시장의 현황과 대책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

▽중견기업 부도 몸서리〓“사방이 다 막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투신사는 회사채를 상환하라고 하고 종금사도 CP마저 리볼빙(연장)을 안해준다. 은행에서 돈 꾸기도 글렀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느라 대출이 엄격하고 회사채와 CP는 위험자산이라고 어지간해선 투자하지도 않는다.”

이달 말 500억원의 회사채를 만기상환해야 하는 중견기업 A사의 자금담당자는 “회사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겠다”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지금 어디를 가도 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게 그의 하소연. “증시에서 유상증자 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자금시장도 흉흉한 소문만 나돌 뿐 돈줄이 꽉 막혀있다. 지금부터 7월까지 중견기업들의 줄도산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기업자금 파트는 지금 초비상이다. 이달 중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이 3조5000억원, 7월은 5조6000억원이다.

채권시장에서 회사채가 제대로 거래되는 기업은 20개 남짓. 신용등급을 보유한 600여개 기업 중 삼성 SK LG그룹 계열의 일부 우량회사를 제외하면 회사채 거래는 아예 마비상태다.

▽2, 3개월을 못 넘기면…〓기업들의 도산걱정은 앞으로 2,3개월간 이어질 것이란 게 자금시장의 관측. 회사채를 소화해 줄 데가 없으니 발행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3∼6개월짜리 기업어음도 누가 사주겠다고 하는 데가 없어 그야 말로 ‘죽을 맛’이다.

권경업(權京業) 대한투신 채권운용팀장은 “기업어음도 A3급 이상만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며 회사채 투자는 아예 꿈도 못 꾼다”며 “투신사가 장기투자를 못하면 종금사라도 단기자금을 리볼빙해줘야 하는데 이것도 안돼 문제”라고 밝혔다.

투신사에 장기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채권투자가 어렵고 특히 7월부터 시행되는 채권시가평가는 투신권 자금이탈을 더욱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는 것. 6월 현재 장부가 평가를 받고 있는 공사채펀드 자금은 27조원. 이중 개인자금은 4조원으로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고 나머지 23조원은 금융기관 예치자금으로 손실분담 문제만 해결되면 채권시가평가가 실시되는 7월을 전후해 빠져나갈 것이란 분석이다.

▽망가진 투신-은행 메커니즘〓6월 이후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31조2000억원. 이중 64%인 20조원이 지금 시장에서 매수세가 없는 BBB 등급 이하 채권이다. 연말에만 10조원의 회사채 만기가 몰려있어 이번 고비를 넘기더라도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실정.

K기업은 현대그룹이 유동성 사태를 겪기 전에는 2차례에 걸쳐 5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대사태 이후 CP도 발행이 안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B투신 사장은 “금감원이 4조원의 대우담보 CP를 80%만 돌려주면 투신사와 은행들이 토해야 하는 손실액은 8000억원”이라며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이 채권시장 마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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