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지원 지나치면 득보다 실…정부역할 축소론 제기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벤처기업이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일부 창업주의 모럴해저드나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폐해가 드러나자 정부가 벤처육성 정책의 기조를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술산업의 호황과 벤처캐피털 및 코스닥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벤처붐 조성에 성공한 만큼 앞으로는 정부 예산을 동원한 직접지원은 줄이고 법적 제도적 환경을 바꾸는 데 주력한다는 것.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일 ‘벤처산업의 발전전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정부의 과도한 지원은 기업인과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벤처 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정부역할 축소론’을 공식 제기했다.

▼넘치는 돈으로 금융업등 기웃▼

▽KDI “벤처 육성책 재검토해야”〓성소미연구위원은 “상당수 벤처기업이 자본시장에서실제 경영에 꼭 필요한 규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조달한 뒤 수익성 있는 사업대안을 찾지 못하자 금융업 인수를 시도하는 등 벤처 본연의 기업가 정신이 퇴색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위험성이 큰 점을 감안해 사업초기에는 조달금액을 최소화하는 반면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코스닥시장에서 액면가의 평균 10배 이상을 공모, 유휴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하는 데만 집착한다는 것.

성연구위원은 “정부의 벤처정책은 벤처붐이 일지 않았던 98년 이전의 여건을 토대로 수립됐으며 올해 예산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면서 “이제는 자생력 배양을 위해 투자와 융자, 조세감면 등 정부의 직접적 지원을 줄이고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원이 과도해지면 기술혁신과 이를 통한 경영실적 개선보다는 코스닥등록 및 증자를 통한 자본이득을 우선시하고 투자자들은 벤처투자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

그는 또 벤처산업의 투자자금이 공급초과 상태인 시점에서 정부가 1조원 규모의 공공벤처펀드를 통해 직접적 투자를 늘리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원분야 확대등 정책변경 검토▼

▽정부도 내심 공감〓재정경제부는 KDI의 문제 제기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올해 초 코스닥시장의 거품론이 제기됐을 때부터 대응책을 검토해온 사안이라고 밝혔다. 다만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당위성은 심리적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코스닥시장에 미칠 충격을 걱정해 당분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입장.

재경부 관계자는 “벤처 육성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이제 겨우 1년을 넘긴 시점에서 정책기조를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다만 정부자금을 신규로 조성하거나 정부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띄우는 방식은 자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보통신 일변도였던 벤처 지원분야를 전자 기계 등 기존 제조업으로 확대하고 지적재산권 보호와 전자상거래 관련 세제정비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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