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소비자 파워]GMO-전자상거래 '두 얼굴의 선물'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지난해말 오슬로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브리티시 에어라인 767편. 기내식을 앞에 두고 옵서버지를 펼친다. 광우병 쇠고기 금수조치와 관련한 프랑스와 영국의 갈등이 실려 있다. 고기를 잘라 조금 베어물다 그만 두고 애꿎은 후추와 소금을 듬뿍 친다. 채식주의자라는 옆자리 승객의 기내식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러나 역시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 아닐까 하는 대목에 생각이 미치면 머리가 아파진다.

GMO 문제만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환경호르몬 추정물질 다이옥신 파동이 당장 우리 식탁을 불안에 빠뜨리고, 어쩌다 들어간 인터넷 경매사이트가 혹시 사기사이트여서 온라인으로 입금시킨 상품대금만 날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전파광고나 인터넷광고는 아이들을 유혹한다.

어느새 유전자조작이나 인터넷 등의 기술문명과 관련한 소비자보호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인류의 식량난 해결을 앞세운 유전자조작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장이 더욱 커지면서 기존의 법이나 제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소비자보호문제가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지역이 유럽 전역을 겨냥한 전자상거래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웨덴의 레츠바이잇 콤은 특정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을 한데 모은 다음 소비자의 집단 구매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체와 가격인하 협상을 벌이는 독특한 온라인쇼핑 서비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웨덴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 독일 영국에도 이미 진출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따라 이와 관련한 소비자피해구제의 기준이나 정보제공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웨덴 조간신문 ‘다겐스 니에테르’의 소비자부 쉘 뢰프베리 기자는 “전자상거래로 물건을 주문할 때 어떤 사이트가 편리하고 가격이 싼지 비교평가해 그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그러나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아직까지 개인정보유출이나 신용카드결제에 대해 불안해 하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신문사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가격정보나 품질비교결과 등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유럽연합(EU)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전자상거래 소비자분쟁의 해결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가지 문제를 검토중인데 스웨덴과 노르웨이도 현재 적용할 수 있는 소비자보호법과의 상호보완방안을 연구중이다.

전자상거래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초월하는’ 위성방송은 광고와 관련해 새로운 소비자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영국의 어린이신문 아우구스틴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광고를 내보냈는데 이를 금지하고 있는 스웨덴에서 문제가 됐던 것. 결국 스웨덴 민영방송에서는 이 광고를 방영하지 못하게 됐으나 북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채널에 대해서는 스웨덴 국립소비자청이 어찌 손을 쓸 수 없었던 것. 스웨덴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광고와 마케팅에서도 어린이 상대의 광고가 금지되어 있다.

GMO를 비롯해 식품안전과 위생에 민감한 유럽인의 정서는 스웨덴 식품안전청의 성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농림부 산하의 식품안전청은 영양관리, 식품안전성, 화학 및 기타 첨가물조사, 유전자재조합식품, 식육위생 및 유제품 검사 등 모든 식품관련 활동을 담당한다. 식수 문제까지 관리한다. 또 GMO는 반드시 농림부를 거쳐 수입되며 식품안전청에서 수시로 시장을 조사한다.

이곳 크리스테르 안데르숀 연구원은 “이같은 조직이 식품의 안전성 확보에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은 수입농산물에 대해 유전자조작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그러나 안전 및 윤리에 관한 문제 때문에 식품업자들도 거래를 꺼려 시장에서 유전자조작 식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소비자보호영역으로까지 들어온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환경보전’ 등의 문제는 최근 선진국에서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다. 독일의 상품시험검사소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제품테스트에 환경문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환경에 해로우면 제품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

98년2월 로레알사의 화장품이 품질과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 ‘수’를 받았으나 포장용기가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환경평가에서 ‘가’를 받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미’로 평가됐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제품이나 소음이 심한 자동차도 어김없이 낙제점을 받고 있다. 검사소의 하이케 반 라크 대변인은 “소비자들 스스로 환경에 해로운 제품은 아무리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싸더라도 좋은 제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제품마다 환경요소의 반영비율은 평균 20% 정도이고 앞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웨이의 소비자옴부즈맨인 토르핀 브자르쾨이는 “이제 소비자보호대상은 자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 이동욱(李東旭)소비자보호국장은 “이미 기존 법이나 제도로 다룰 수 없는 소비자보호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포함한 소비자보호정책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생산자 입장에서 품목별로 수립될 것이 아니라 소비자보호라는 큰 주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톡홀름·오슬로·베를린〓김진경·이수형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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