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실태]은행 「돈줄」죄고 정책은 안먹히고

  • 입력 1997년 12월 28일 19시 58분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중소기업 경영난 실태」는 부도 초읽기에 몰린 기업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은행이 본래의 역할인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외면하는데다 정부도 금융창구에서 전혀 실천되지 않는 공허한 대책만 남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금융권과 기업간 자금 흐름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기업 기반의 전면적 붕괴마저 피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다음은 중소기업청이 전국 중소기업의 실태를 유형별 지역별로 조사한 내용.◇ 유형별 사례 ▼대기업 발행 진성어음도 할인되지 않는다〓경기 S사, 인천 J사 등은 S전자 D중공업 등 대기업이 발행한 진성어음을 할인받지 못해 흑자부도가 우려되고 있다. 대구 S사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상업어음 할인 거래한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인천 S사는 은행 적금에 질권을 설정하고 어음할인 약정을 체결했지만 최근 어음할인을 일절 거부당했다. ▼신규대출은 하늘의 별따기〓충북 J사는 담보물이 있어도 신규대출은 곤란하고 대출금 상환기간 연장도 대출금 일부를 상환해야 가능하다고 거래 은행으로부터 통보받았다. 강릉 E사는 만기도래한 대출금을 기간 연장이 아닌 신규대출로 전환하면서 20%의 고금리를 물어야 했다. 광주 K사는 지방 은행으로부터 만기 대출금의 상환기간 연장을 거부당했다. 이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충남 아산 H사는 최근 금융기관의 여신이 중단됐으며 이미 이뤄진 대출에 대한 기간연장도 되지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기 J사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적금가입 등 추가담보를 제공해야만 대출금 상환기간을 연장해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종금사예금 담보대출과 기업어음(CP)상환연장 기피〓수출업체인 대전 A사는 종금사 예금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요청하였으나 즉시 거절당했다. 서울 K사는 만기가 된 CP의 상환기간을 실제로 최대 20일 연장받았으며 그나마 최근에는 일주일 이내로 연장기간이 단축됐다. 최소 2개월 이상 연장해주기로 한 전국 은행들의 결의는 사실상 무너졌다. 골판지 제조업체인 수원 J사는 H종금의 CP연장 불허로 흑자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입 신용장이 개설되지 않는다〓현재까지는 많은 수출업체들이 재고분으로 가동하고 있어 수출이 늘고 있지만 수출용 원자재 신용장이 개설되지 않아 향후 수출 증가율이 크게 둔화될 전망이다. 수출이 둔화되면 외환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원 D사는 내국 신용장 거래가 중단돼 원자재를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 P사는 바이어들이 원화가치 하락을 이유로 수출가격을 50% 이상 내리라며 가격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 S무역은 신용장 거래가 중단돼 동구권과 중남미 거래선을 잃게 됐다. ▼결제관행 변화에 따른 애로〓대구 H사는 종전에 현금 30%, 어음 70%로 대금결제를 받았으나 최근엔 100% 어음으로 지급받아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 S사는 최근 1백만원 이상의 결제대금을 5∼6개월 짜리 장기어음으로 지급받아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경남 A사는 『대기업들이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을 메우기 위해 납품단가를 인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역별 사례 ▼부산〓은행의 여신 중단으로 지역 내 중소기업의 30% 정도가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다. 내년의 실업률은 7.0%, 실업자수는 14만6천명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들어 최근까지 무역업 등록증을 자진반납한 업체가 모두 58개사에 이르며 무역업 등록증을 경신해야 할 2천9백60개 대상업체 중 7백84개사만 24일 현재까지 경신했다. ▼대구 경북〓지난달 관내 중소 제조업의 조업률은 65.4%로 전년 동월(68.0%)에 비해 2.5%포인트 하락했다. 중소기업의 경영악화로 실업자수는 대구지역의 경우 3.6%에 달한다. ▼광주 전남〓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 중 동진철강 등 광주지역 8개사, 금진 등 전남지역 3개업체가 부도처리됐다. 지난 6일 한라중공업이 부도난 뒤 48개 협력업체가 연쇄도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대전 충남〓만도기계의 협력업체가 51개나 되고 동사 발행 진성어음의 할인거부와 은행권의 신규여신 중단조치로 긴급 운영자금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 ▼인천 경기〓인천지역의 어음지급 비중이 최근 20%포인트 증가하고 재고량도 14% 늘어났다. 실업자가 늘어 최근 3개월간(9∼11월) 인천지역 실업급여 지급인원이 2천7백27명(16억4천9백만원)에 이르렀다. 기아 협력업체가 집중돼 있는 지역으로 기아자동차가 발행한 진성어음의 대부분이 할인되지 않고 있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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