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매국노’ 이완용의 글씨, 일본인에겐 조선 방문 기념품이었다

  • 동아일보

‘명필’로 근대 서화계서 비중 커
일제강점기 예술계 풍경 조명
◇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강민경 지음/288쪽·2만2000원·푸른역사


‘매국노’ 이완용(1858∼1926)은 글씨를 매우 잘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자의 사회적 평판이 예술성에 대한 평가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오늘날까지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면 혹시 ‘어마어마한 명필’이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좋게든 나쁘게든 그런 인물을 미술사적으로 진지하게 조명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던 게 우리 실정. 그래서 그저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러 왔던 그의 글씨를 벼리 삼아, ‘나라 잃은 시대’ 예술계의 풍경을 조명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이완용은 글씨 청탁을 많이 받았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이 그의 글씨를 기념품으로 여길 정도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인 저자는 이완용이 경성서화미술원과 서화미술회, 서화협회 등의 창설에 깊이 간여하는 등 근대 서화계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음을 서술한다.

독립문(獨立門) 편액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하면서 이완용과 김가진(1846∼1922)이 쓴 천자문 필획과 대조하는 대목, 안중근 의사(1879∼1910)와 이완용의 글씨를 비교하는 대목 등도 흥미롭다.

‘반민족행위자지만 예술은 훌륭했다’거나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은 전혀 아니니, 오해는 말길. 그래서 이완용의 글씨는 어땠다는 걸까. 나중에 A급 전범으로 기소됐고 이완용과 교분이 있던 도쿠토미 소호(1863∼1957)는 “미무(媚娬)하고도 수색(秀色)이 풍부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예쁜 스타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훗날의 평가는 “필획에 힘이 없고 속기가 많이 흐르며 골기(骨氣)가 약하다”(‘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등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시골 선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고관 댁 양자로 입적한 이완용의 어린 시절 등을 통해 그 이유를 추정한다.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그렇게 글씨를 많이 쓰고…그러니 자기 글씨를 진지하게 돌아보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예쁘게 보이도록 쓰는 데 치중하고 만 건 아닐까.”

단편 ‘운수 좋은 날’(현진건)의 한 대목을 소개한 뒤 “아무리 싼 김규진 그림이라도 막걸리 곱빼기 60잔 값인 6원이었음을 상기해 보자”는 식으로 독자가 읽기 편하기 서술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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