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망했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취미 같았다. 지난해는 발표 이력이 없어 발간 지원 사업에 응모조차 못 했다. 올해 겨우 요건을 맞추니 이번엔 요강이 바뀌었다. 첫 책 지원은 35세 이하만 가능했다. 담당자에게 책 한 권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제외한 이유를 물었다. 사무실에서 논의해 정한 사안이란다. 말로는 늘 그렇게 간단했다.
당선 전화가 왔을 때, 소설보다 조금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계약서에 일용직이라 적힌 세 시간짜리 일을 마치고, 엄마 집에 들러서 김치와 무와 배추를 가져와 냉장고에 넣었다. 고령의 노인네가 무릎에 연골 주사를 맞고 허리에 파스를 붙여가며 수확한 농작물이었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노고를 너무 쉽게 취했다.
당선 사실을 한동안 알리지 않았다. 웬만한 상이라야 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정말 나라고? 나라고 말하는 순간 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몇 해 전, 중복 투고 여부를 확인한 뒤 조금만 기다려 달라던 신춘문예 담당 기자의 전화를 성탄 이브까지 기다린 적이 있다. 대뜸 전화해 낯선 제목의 작품을 썼냐는 잡지사도 있었다. 아, 잘못 걸었습니다. 그게 다였다. 이미 나온 말을 너무 쉽게 거둬갔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새벽 수영을 가고, 일용직으로 일하고, 강아지 똥을 치우고, 심사위원들이 큰 흠을 놓쳐 준 데 감사하며 당선 소감을 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간이 흘렀다. 세상에서 나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되어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내려다보았다. 일상이 두 겹으로 흘러가는 동안 들뜨지 않고 온전하게 행운을 누렸다.
내 식대로 계속 써보라고 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상상한 가장 완벽한 복수가 이뤄졌다.
소창동, 난계 소설반, 대구 소설가님들, 엄 선생님. 나의 별 지민, 지안, 부모님…. 고마운 이름들은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너무나 큰 행운을 얻었다. 이 행운이 구석진 곳에서 숨죽여 우는 수많은 진화들에게도 가닿았으면 한다.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 사학과 졸업
삶의 변방, 여러 에피소드 통해 구체적으로 담아
●심사평
은희경 씨(왼쪽)와 구효서 씨.올해 응모작 편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많을수록 좋은 작품을 발견할 확률도 높아지는 걸까. 신춘문예에 관한 한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신춘문예 심사란 응모작의 양적 팽창이나 전반적 수준과 관계없이 ‘뛰어난 한 편’을 찾는 작업이다. 그 한 편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월한 심사는 아니었다.
‘Heritage’는 안정된 문장을 기반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한다. 교육 현장의 디테일 또한 생생하고 흥미롭다. 두 인물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교육 철학에 담긴 진지함과 집요함이 독자를 설득한다. 그러나 소설 장르가 갖는 다양함과 복잡함의 세계를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 그에 비하면 ‘사랑 짓기’는 소설이 갖춰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사랑채를 짓는 과정을 통해서 인물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포착했고 단정한 문장과 적절한 인물의 배치에도 훈련된 솜씨가 엿보인다. 다만 너무 익숙한 질문에 익숙한 전개, 예상된 결말이어서일까. 당선작으로는 결정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동행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동행에 대해 사유하는 소설이다.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는 전염병이라는 아이디어가 흥미롭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시적 표현이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중편소설에 담기에는 규모가 작은 서사였고 사랑에 대한 결론 또한 다소 안이해서 무게감을 얻지는 못했다.
당선작인 ‘한시직 진화’는 진화라는 인물이 겪는 한시직(임시직)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변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사격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 그리고 총이 있는 일상의 긴장감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여러 층위 한시직들의 풍경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큰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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