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장인의 손길… 작품에 깃든 인고의 시간 고스란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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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손…’ 김정옥-김혜순 장인
사기장-매듭장 움직임에 무용 접목
“작품 아닌 우리가 주인공… 감격”

김혜순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가 3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무대에서 실을 얼레에 감고 있다(위 사진). 김정옥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가 찻잔을 빚고 있다(아래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김혜순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가 3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무대에서 실을 얼레에 감고 있다(위 사진). 김정옥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가 찻잔을 빚고 있다(아래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처음엔 겁이 났습니다. 늘 주목받는 건 제가 만든 매듭이었지, 제가 아니었으니까요. 고민하다 결심했습니다. 뭔가를 해내려 하기보다 57년간 내가 매일같이 작업해 온 그대로 보여주자고요.”(김혜순 매듭장)

하나의 백자와 매듭이 만들어지기까지 작품에 깃든 장인의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립무형유산원이 기획해 3, 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무대에 오른 공연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은 김정옥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81)와 김혜순 매듭장 보유자(79)의 몸짓에 현대무용을 접목해 이를 드러냈다.

공연에서 김 사기장은 1막이 펼쳐지는 40분 내내 쉴 새 없이 발로 물레를 돌리며 찻잔을 빚었다. 무대에 오른 김 매듭장 역시 2막 내내 끈 틀 위에서 두 손을 엇갈리며 끈을 엮었다. 이들 뒤에 선 무용수들은 물레 위의 흙덩이처럼 몸을 돌리고, 끈 틀 위의 실처럼 얽히고설켰다. 보이지 않는 장인의 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공연을 앞둔 김 사기장과 김 매듭장을 2일 각각 만났다. 이들은 “작품이 아닌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 돼 무대에 오르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했다.

특히 아들 김경식 사기장 전승교육사, 손자 김지훈 이수자와 함께 무대에 오른 김 사기장은 “3대가 함께 하는 공연이라 더 뜻깊다”고 했다. 김 사기장은 경북 문경의 도예가문 ‘영남요’의 7대 장인으로 1996년 보유자가 됐다. 아들과 손자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들은 전기 물레와 가스 가마 대신 전통 발 물레와 장작 가마를 고수한다. 공연은 전통을 고집하는 이들의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김 사기장이 발로 물레를 돌리며 찻잔을 빚는 동안 아들과 손자는 발로 흙을 밟고 손으로 달항아리를 빚는 식이다.

“조선 왕실의 자기를 만들었던 사기장 후손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통을 지킨 가문은 우리뿐입니다. 아들과 손자가 무대 뒤에서 나를 받쳐 주니 여한이 없습니다.”(김 사기장)

시누이이자 매듭장이었던 고 김희진 씨(1934∼2021)의 뒤를 이어 2017년 보유자가 된 김 매듭장은 “이번 공연을 통해 내가 배우고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 덕에 50년 넘는 세월 동안 걸어온 나의 작업 역시 하나의 행위예술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며 웃었다.

이들이 무대를 통해 전하려는 건 ‘인고의 시간’이었다. 김 사기장은 “흙이 사기가 되려면 20가지가 넘는 작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중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고 했다. 일례로 흙을 물에 풀어 구정물을 걸러내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 김 사기장은 “욕심을 비운 무념의 몸짓을 통해 관객들에게 인고의 시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매듭장은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이 사물을 지닐 누군가를 상상한다”며 “늘 그랬듯 무대 위에서도 마음 의지할 곳 없는 누군가의 끈이 되어주고, 이들과 인연을 맺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김정옥#김혜순#국립무형유산원#국립국악원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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