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연결된 두 소장가

‘내가 죽고 나면 작품들이 고물 덩어리가 되는 건 아닌가?’
모든 예술가가 갖는 불안 중 하나는 이런 생각일 것이다. 예술가가 남긴 것은 한 끗 차이로 예술이 되거나,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고 만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작품을 알아봐주는 타인이다.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터, 전시를 여는 큐레이터, 글을 쓰는 평론가와 미술사가에 의해 사회 속으로 들어올 때 작가가 남긴 것은 비로소 작품이 된다.
● 산책하다 만난 작품에 사로잡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태섭 씨는 1989년 봄 산책을 하다 부동산 주인의 소개로 간 원 화백의 부암동 집에서 우연히 작품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한 방 가득 작품이 있었는데 지금껏 본 것과 달랐어요. 집을 보러 간 건데, ‘집보다 그림이 훨씬 좋네’라고 했죠. 들어본 적 없는 화가였지만, 고민 끝에 집과 작품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1990년에도 공간화랑에서 ‘원계홍 10주기 추모전’을 열었던 그는 “그분 작품에 눈이 멀어 포로가 됐던 것 같다”며 “이 때에도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1년 후에야 치렀고 경제 상황도 불균형해져 한동안 고생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넘겨받은 작품은 약 200점,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에 인수했다.

지금도 부암동 집에 살고 있는 김 씨는 “방 네 칸짜리 집에서 한 두 칸은 그림차지였다”며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 갈 때까지는 앞집 방 세 칸을 빌려 공부방으로 썼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씨는 원 화백의 부인과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부탁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영주권자였던 사모님은 한국에 오면 저희 집에서 가족처럼 지냈어요. 이경성 전 관장은 ‘작품은 팔지 말고 잘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했죠. 그 분들의 말씀으로 견뎠습니다.”
● 고미술상가 그림 더미에서 발견하기도

원 화백의 작품에 반한 또 다른 컬렉터는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이다. 윤 회장은 1984년 크라운제과 대표 시절 처음 인사동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접했다. 그도 작품을 사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원 화백의 부인이 남편의 흔적을 보내길 망설였다.
윤 회장은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프레임도 없이 수백 점 그림이 엘피판처럼 쌓여있는데 그 사이에 원 화백 그림이 있었어요. 그 때 느낌이 참 슬펐습니다.”

이후 생각날 때마다 원계홍을 검색해보던 윤 회장은 약 10년 전 쯤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 씨의 글을 발견했다. ‘제가 작품을 좀 가지고 있고 원 화백을 존경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셨냐’고 댓글을 달아 두 사람이 연결됐다.
“김태섭씨의 따님이 전화를 주셔서 받자마자 찾아뵈었죠. 교수님이 유작을 다 받은 걸 그 때 알게 됐고 그 후로도 잘 알고 지냈는데, 최근 100주년 전시를 열자고 하셨어요.”
전시장에서는 윤 회장 소장 16점, 김 씨 소장 65점을 비롯한 작품 100여 점과 기록을 볼 수 있다.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정갈한 정물과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이수균 학예실장은 “미술 이론서를 굉장히 많이 읽고 자신감도 가졌지만 세상과 교류하지 않았던 작가”라며 “먼지처럼 흩어져 고물가게에서 마주칠 뻔한 운명을 소장가가 잡아준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5000원.

김민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