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도 처음 봤다”…조선 후기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공개

  • 뉴스1
  • 입력 2022년 8월 18일 10시 39분


코멘트
휴대형 소형 해시계 ‘일영원구’. 문화재청 제공
휴대형 소형 해시계 ‘일영원구’. 문화재청 제공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바 없는 휴대 가능한 소형 해시계가 경매를 거쳐 국내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간담회를 열고 지난 3월 미국에서 경매로 매입한 ‘일영원구’(日影圓球)를 공개했다.

고종 27년(1890년) 제작된 일영원구는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형(球形)의 휴대용 해시계다. 동과 철로 만들어진 일영원구의 높이는 23.8㎝, 구체 지름은 11.2㎝로 소형 지구본 크기 정도다.

다림줄이 설치됐던 부분. 문화재청 제공
다림줄이 설치됐던 부분. 문화재청 제공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는 반구(半球) 형태로, 태양의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뾰족한 막대인 영침(影針)이 고정돼 있어 오로지 한 지역에서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영원구는 맞물린 두 개의 반구가 각종 장치를 조정하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작동법을 단계별로 보면 우선 추를 달아 늘어뜨린 다림줄로 수평을 맞추고, 나침반으로 방위를 측정해 해시계가 북쪽을 향하게 한다. 이어 위도를 조정한 뒤 기존 해시계의 영침에 해당하는 ‘횡량’이 드리우는 태양의 그림자가 홈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파악했다. 일원영구의 영침은 ‘T’자형으로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형태다.

일영원구 ‘시패’와 시각 눈금 측정. 문화재청 제공
일영원구 ‘시패’와 시각 눈금 측정. 문화재청 제공
현재 다림줄은 유실됐으나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흔적을 확인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일영원구의 반구 한쪽에는 12지(十二支) 명문과 96칸의 세로선으로 시각을 표시했다. 하루를 12시 96각(刻·15분)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따른 것이다.

정오(正午) 표시 아래에는 둥근 구멍인 시보창(時報窓)이 있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쪽의 반구를 움직이면, 이 창에 12지 시간 표시인 시패(時牌)가 나타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영원구의 위도 조정 장치. 문화재청 제공
일영원구의 위도 조정 장치. 문화재청 제공
학계는 일영원구가 국보인 자격루와 혼천시계에서도 보이는 12지 시간 알림 장치를 둔 점에서 조선의 전통 과학기술을 계승했다고 평가하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급증한 구한말 상황에 맞게 다른 나라에서도 쓸 수 있도록 고안한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유물 해설을 맡은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는 “위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있어 항해 중이나 남반구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적으로 정교할 뿐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갖춘 명품 해시계로서 평가할 수 있다”며 “향후 연구·교육 자료로써 활용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T’자형 횡량. 문화재청 제공
‘T’자형 횡량. 문화재청 제공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과학유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쪽의 반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하였다’(大朝鮮開國四百九十九年庚寅七月上澣新製)는 명문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印)이 새겨져 있어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에 의해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상직현은 1881년에 수신사 일본 근대 문물을 접한 무관으로, 국왕의 호위와 궁궐 및 도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영원구의 국외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초 소장자이던 일본 주둔 미군장교의 사망 이후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영원구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