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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영끌’에 ‘부모찬스’ 쓰는 주인공… MZ작가 소설에도 부동산 바람

입력 2021-12-06 14:00업데이트 2021-12-0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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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쉽게 돈을 벌고 있어. 우리만 빼고.”

어느 날 ‘영주’는 ‘나’에게 더 늦기 전에 아파트를 사야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와 영주는 막 결혼한 30대 신혼부부로 전셋집에 살고 있다. 영주는 “집값이 오르는데 집주인이 전셋값을 그대로 두겠냐”며 지금 아파트를 사면 시세 차익으로 3억 원은 벌 수 있다고 나를 몰아붙인다. 결국 부부는 매매가 6억6700만 원의 아파트를 구입한다. 곧 이 아파트의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부부는 당초 예산을 훌쩍 넘겨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한다.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도 모자라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는 ‘부모 찬스’를 쓰는 부부의 모습을 비추며 소설은 씁쓸하게 끝난다.

지난달 29일 출간된 소설집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창비교육)에 담긴 단편소설 ‘길을 건너려면’의 줄거리다. 이 소설을 쓴 강석희 작가(35) 역시 소설처럼 최근 결혼한 뒤 지난해 아파트를 샀다. 평소 부동산엔 관심이 없던 강 작가였지만 최근 벌어진 아파트 대란 속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패닉바잉’(공황구매)을 했다. 그는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 이야기”라며 “부동산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20, 30세대에 제일 큰 문제라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으로 고통 받는 MZ세대(밀리네얼+Z세대)가 등장하는 소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즉각 반응하는 경제경영서나 빠르게 써낼 수 있는 에세이에서 부동산 대란이 다뤄진 건 지난해부터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집필해야 하는 문학 부문에서도 이런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

부동산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쓴 작가들은 스스로가 MZ세대이기도 하다. 지난달 23일 출간된 장편소설 ‘월 200도 못 벌면서 집부터 산 31살 이서기 이야기’(페이지2북스)가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31세의 9급 공무원이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와 서울 변두리에 있는 22평 주공아파트를 사고 대출금을 갚아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담았다. 작품을 쓴 이서기 씨(30·필명)는 실제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8급 공무원. 이 씨는 “소설의 절반 이상은 제가 겪은 일들과 친구들에게 들은 사연을 모은 현실”이라며 “소설처럼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 집을 샀고 그 경험을 녹여 작품을 썼다”고 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쓴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끌기도 한다. 올 8월 출간된 장편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서삼독)는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송희구 씨(38)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내 집 마련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20대 직장인의 모습을 그려 온라인에서 화제가 돼 출간까지 이어졌고 1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송 씨는 “집을 사지 못해 예비 배우자와 갈등을 겪거나 허탈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소설에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최양선 작가(47)가 지난달 25일 출간한 장편소설 ‘세대주 오영선’(사계절)처럼 중년 작가가 MZ세대가 겪는 불안감을 다룬 소설도 있다. 이 소설은 29세 여성 주인공 오영선이 아파트 청약 시장에 뛰어들어 집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유튜브 등 시대의 흐름을 즉각 반영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최근 문화계 흐름이 출판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며 “문학이 현재 사람들이 고민하는 지점을 다루며 대중과 호흡하는 건 긍정적 신호”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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