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잘나가는 변호사요? 생계형 직장인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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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쾌변’ 쓴 박준형 씨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오늘도 쾌변’(웅진지식하우스)은 그 가면을 가감 없는 쾌변(快辯)으로 내팽개친다. 저자는 대한민국 변호사 2만7880명 중 하찮은 1인을 자처하는 박준형 씨(39). “‘잘나가는 변호사’와 지구 열두 바퀴쯤의 거리가 있고 존재감은 중력의 2만7880분의 1조차 작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를 9일 만났다.

―‘생계형 변호사’라는 필명으로 글을 연재했다. 첫 글을 쓴 순간은 어땠나.

“거창한 계기는 없다. 혼자 야근하다 ‘집에 갈까’ ‘내일 할까’ 잡생각 중에 ‘브런치’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가볍게 표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거창함, 허세를 극도로 거부한다.

“변호사가 쓴 책이라면 절반은 어렵게 지식을 전달하고, 나머지는 눈물콧물 빼는 사건 이야기다. 나는 다른 길로, 이 바닥에 없으면 모르는 이야기를 재밌게 해보고 싶었다.”

―변호사를 향한 판타지에 ‘그게 아니에요!’ 항변하는 느낌이다.

“변호사가 되면 좋은 삶이 보장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아닌 거다. ‘서초동 사람’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기도 하다. 드라마처럼 멋있게 판사와 싸우는 일은 절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제가 해보니까요, 그건 아니던데요’ 하고 솔직히 말하면 재미도 있고,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소송전에선 빌런과 히어로의 구별이 의미 없다’ 등 찰진 표현이 번뜩인다.

“에세이는 읽어본 지 오래됐고 책은 업무상 읽는 게 대부분이다. 어릴 때 ‘삼국지’는 열심히 봤다.”

―삼국지가 기발한 표현의 근원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예능 PD가 꿈이었다. 꿈은 못 이뤘지만 TV나 글을 보며 재밌는 플롯을 상상하곤 했다. ‘무한도전’은 폐지될 때까지 챙겨 봤고, tvN의 ‘SNL 코리아’도 좋아했다. 주류보다 B급 코미디,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

―사람을 웃기면 기쁜가.

“당연하다. 말로 하는 ‘드립질’에는 약한 ‘키보드 워리어’다. ‘글로 쓸 때 재밌다’는 반응이 온다.”

―어쩌다 변호사가 됐나.

“한 번도 이 일을 생각해본 적 없다. 비대면이 좋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기도 어렵다.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더라.”

―‘자갈치 부인’과 중국동포 에피소드는 찡하다.

“귀화를 거부당한 중국동포는 납득이 안 됐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갈치 부인’은 포기하지 않는 의뢰인 덕분에 ‘정의를 맛본’ 경험이었다.”

―딱딱한 판결문으로만 귀결되는 변호사 일의 인간적 모습이 생생하다.

“여전히 변호사나 법조계에 오해가 많다. 과거 이미지로 ‘영업하려니’ 거창한 면이 있지만 속은 똑같은 직장인이다. 부담 없이 편히 봐주시면 좋겠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도 쾌변#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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