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 불이 난다면…노트르담 화재로 본 우리 문화재 안전 실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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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프랑스 노트르담대성당 화재가 준 충격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문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왕실의 제례문화를 상징하는 종묘(사적 제125호)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의 ‘종묘관리소 재난매뉴얼’을 통해 가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과 유물 보호 절차를 살펴봤다.

2019년 5월 1일 오전 11시. 종묘 정전(正殿) 한 구석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금세 치고 올라오면서 불길이 거세질 위기가 닥친다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는 골든타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선 현장 감독관이 119에 신고함과 동시에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즉시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관람객 안전을 확보한 뒤 즉시 정전 내부에 모셔져 있는 신주와 제기류를 200m 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한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면, 신주와 제기류를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다시 이동시켜 보호한다. 소방대원은 미리 제공받은 종묘의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재 진압에 나선다.

유물이 많은 박물관 역시 화재 대응 매뉴얼과 훈련을 반복한다. 18만 점이 넘는 유물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재 발생시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먼저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화재 땐 불에 타기 쉬운 종이 관련 유물을 먼저 구출한다”며 “지난해 재난 훈련 땐 ‘조선왕실의궤’를 가장 먼저 보호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역시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때, 부실한 초기 화재 진압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무관은 “국가지정 목조 문화재 327개소에 안전경비인력 700여 명이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숭례문 화재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목조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상대적으로 짧다. 때문에 불이 나면 즉각적인 유물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이 속초시 보광사로 번지자, 사찰 내부에 있던 현왕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를 신속하게 인근 안전 장소로 옮겼다. 덕분에 축구장 735개 너비의 땅을 초토화시킨 화마에도 단 1건의 문화재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재난 시 가장 먼저 옮겨야 할 문화재들을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뒀다”며 “다행히 훈련해왔던 노력이 결과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대처 연습은 아무리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문화재방재연구소장)는 “건축 문화재에서 화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도록 소방법 등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실전과 같은 반복 훈련을 진행하는 세밀한 안전행정이 요구 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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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청이 국내 문화재들을 긴급 점검한다. 화재에 취약한 국가지정문화재는 목조 건축물 등 469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6일 지방자치단체에 소방시설 등 방재시설의 신속한 가동성 확보, 안전경비원을 통한 현장점검 강화를 청했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궁궐, 종묘, 조선왕릉, 현충사 등의 소방시설도 점검 중이다. 

동해안 산불 이후 계속 가동하고 있는 문화재 안전상황실 운영도 강화한다. 지자체, 돌봄단체, 안전경비원이 현장에서 화재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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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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