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LA, 아테네, 피렌체… 지구촌 명소 누비는 꿈의 ‘크루즈 컬렉션’

  • 동아일보

2018 크루즈 컬렉션

일본 교토,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피렌체….

이 도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면서 올해 주요 패션 하우스가 패션 여행지로 택한 곳이다. 이들 도시에서 크루즈 컬렉션이 실제 열렸거나 도시가 컬렉션의 영감으로 부상했다.

크루즈 쇼의 원조는 샤넬이라고 할 수 있다. 샤넬은 2000년부터 매년 5월 프랑스 파리, 생트로페,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부호(富豪)들의 여행지에서 크루즈 컬렉션을 열어 왔다.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류층의 크루즈 여행의 콘셉트다. 처음에는 유럽 부호의 휴양지가 중심이었지만 명품 소비층이 탄탄한 아시아와 중동 등으로 눈을 돌렸다. 2013년 싱가포르, 2014년 두바이, 2015년 서울에 온 것.

샤넬의 ‘원정 패션쇼’에 디오르, 루이뷔통이 뛰어들면서 크루즈 쇼는 더욱 성대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루이뷔통은 201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모나코 대공비를 만나 모나코 궁 안뜰에서 최초의 패션쇼를 허락받기도 했다. 아름다운 궁전과 함께 루이뷔통이 세운 거대한 유리 텐트에 패션계는 찬사를 보냈다. 샤넬은 2014년 두바이 왕가가 소유한 인공 섬에서 하룻밤이면 사라져버릴 환상적인 건물을 세워 ‘아라비안 나이트’를 새로 썼다.

사실 패션하우스가 세계를 누비며 크루즈 쇼를 진행하는 배경에는 냉정한 비즈니스 계산이 깔려 있다. 가을·겨울 컬렉션에 지쳐갈 때쯤 크루즈 컬렉션이 매장에 등장하면 신선함과 함께 새로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크루즈 쇼가 상륙한 도시에서의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다. 쇼에 초대받기 위해 각 도시의 우수고객(VIP) 간 웃지 못할 소비 경쟁도 벌어진다.

배경이야 어떻든 간에 올해에도 패션하우스는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세계적인 저성장으로 럭셔리 산업이 럭셔리함을 잃어갈 때 크루즈 쇼는 외친다. 럭셔리는 여전히 판타지라고.



아테네에서 피렌체까지


그리스 아테네를 테마로 한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 샤넬 제공
그리스 아테네를 테마로 한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 샤넬 제공


3일(현지 시간) 크루즈 쇼 릴레이의 출발선을 끊은 곳은 샤넬이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를 라거펠트는 올해의 테마로 그리스 아테네를 정했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를 거대한 아테네 신전으로 탈바꿈시켰다. 원래 그리스로 떠나려 했지만 라거펠트의 눈높이에 맞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달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가 아테네의 신전으로 변했다. 샤넬이 창조한 고대 그리스의 무대에서 모델들은 그리스 여신으로 분했다. 샤넬 제공
이달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가 아테네의 신전으로 변했다. 샤넬이 창조한 고대 그리스의 무대에서 모델들은 그리스 여신으로 분했다. 샤넬 제공


“사실 르네상스는 고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파워풀하고 예측 불가능한 젊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무자비한 신들처럼 말이죠.”

샤넬


라거펠트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의 영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크루즈 컬레션은 젊은 그리스 여신과 님프의 귀환이었다. 하얀색 휘날리는 드레스에 허리를 수놓은 자수장식, 목과 손목을 장식한 황금색 액세서리가 돋보였다. 고대 그리스의 전사를 연상케 하는 글래디에이터 샌들, 샤넬의 가브리엘 백과 어우러진 고대 꽃병 모티프가 주목을 받았다.

밀라노 폰다지오네 프라다 전시관에서 열린 프라다 리조트 컬렉션.
밀라노 폰다지오네 프라다 전시관에서 열린 프라다 리조트 컬렉션.


7일(현지 시간) 프라다의 리조트 컬렉션은 본고장 밀라노에 머물렀다. 프라다의 리조트 컬렉션은 원래 남성 봄·여름 패션쇼에 함께 선보이다 올해 처음 별도의 쇼로 독립했다. 장소는 에토리오 에마누엘레 2 쇼핑몰의 폰다지오네 프라다 전시관이었다.

프라다


프라다는 이 전시관에 ‘실제와 가공의 순간 사이의 대립’의 의미를 담았다. 창문 너머의 동그란 지붕, 기둥이 나눈 공간이 색다른 순간의 만남과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는 게 프라다의 설명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우치아 프라다는 “우아함을 동시대적인 감성과 스포츠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달 말 구치의 크루즈 쇼가 펼쳐질 피렌체 피티 궁전.
이달 말 구치의 크루즈 쇼가 펼쳐질 피렌체 피티 궁전.


29일(현지 시간) 구치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로 떠날 예정이다. 세계 최초로 피렌체 피티 궁전 팔라티나 미술관에서 2018 구치 크루즈 쇼를 열기로 했다. 구치가 피렌체를 선택한 것은 사회공헌의 아이디어도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과 피렌체 시와 함께 하는 복합 문화 프로젝트 ‘프리마베라 디 보볼리(Primavera Di Boboli)’의 일환이다. ‘보볼리 정원의 봄’이라는 뜻의 ‘프리마베라 디 보볼리’ 프로젝트는 보볼리 정원을 복원하고 개선시켜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우피치 미술관과의 협력하에 이탈리아 문화유산활동관광부와 피렌체 시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문화 프로젝트다. 구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향후 3년간 우피치 미술관에 200만 유로(약 25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아시아-미국으로 떠나는 이국적 여행

루이뷔통이 택한 일본 교토 인근의 미호 박물관.
루이뷔통이 택한 일본 교토 인근의 미호 박물관.


패션하우스가 아시아를 빼놓고 갈 리가 없다. 14일 열린 루이뷔통의 크루즈 쇼는 아시아에서 가장 열정적이자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몰려 있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장소는 교토 교외 시가 현의 미호박물관이었다.

일본 교토 교외의 미호박물관에서 열린 루이뷔통의 크루즈 컬렉션. 루이뷔통 제공
일본 교토 교외의 미호박물관에서 열린 루이뷔통의 크루즈 컬렉션. 루이뷔통 제공


1997년 문을 연 미호박물관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를 건축한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한 작품이다. 금속으로 된 거대한 터널과 미래적인 흔들 다리를 지나면 깊은 우림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루이뷔통은 여행의 정취(Spirit of Travel), 수려한 자연 환경, 건축적 걸작과 예술의 조우 등 브랜드가 전통적으로 추구하는 요소를 모두 만족한다며 미호박물관을 네 번째 크루즈 쇼 무대로 택했다. 앞서 루이뷔통은 모나코, 미국 팜스프링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쳤다.

루이뷔통


피날레의 장식을 한국 배우 배두나가 맡았다.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뮤즈인 배두나는 루이뷔통 2016 봄·여름 광고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샌타모니카 산맥에서 열린 디오르의 크루즈 컬렉션. 디오르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샌타모니카 산맥에서 열린 디오르의 크루즈 컬렉션. 디오르 제공


올 초 디올에 합류한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유리는 11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샌타모니카 산맥으로 떠났다. 루이뷔통도 캘리포니아에서 크루즈 쇼를 치른 적이 있었지만 치유리가 택한 로스앤젤레스 근교는 사막과 산이 있는 곳이었다. 디오르는 이곳에 커다란 열기구를 띄우고, 사막 빛깔의 옷을 입은 모델들을 데리고 왔다.

디오르


치유리는 자신의 첫 번째 디오르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브랜드의 유산에 캘리포니아의 광활함을 담았다. 애초의 영감은 프랑스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의 라스코 동굴 벽화였다. 1951년 므시외 디오르은 벽화그림을 차용해 원시 여성을 떠올리는 프린트를 만들어 냈다. 치유리는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좀 더 야성적인 원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치유리가 샌타모니카 산맥을 크루즈 쇼의 장소로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미국 패션전문지 WW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제가 컬렉션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은 자연과의 교감을 느껴야 하고, 스스로와 교감해야 하며 활기차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패션쇼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2018 크루즈 컬렉션#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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