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톡톡]돌고, 돌고, 돌아온 LP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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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요즘 청소년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LP판(long-playing record). CD, DVD, MP3플레이어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세월의 뒤편으로 밀려난 줄 알았던 LP가 마니아를 중심으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나간 물건인 LP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왜 그들은 LP의 향수에 젖어 있는 걸까요. 》
 
추억 속 LP
 
“어릴 적 ‘구찌’라는 은어가 있었어요. 돈을 모아 무리 지어 LP판을 사러 다니는 애들을 부르는 속어였죠. 용돈이나 새 책 대신 헌책을 사고 남는 돈을 모아 음반을 샀지요.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장 두 장 좋아하는 음반을 모으고, 함께 듣던 추억이 마냥 그립네요.”―김동섭 씨(49·회사원)

“옛날에는 나라에서 금지곡을 지정했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도 교육을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금지됐어요. 하지만 워낙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음반을 구하려고 세운상가에 갔는데 마침 단속반이 뜬 날이더라고요. 첩보영화처럼 유통업자와 접촉해 간신히 구했던 기억이 나네요.”―장민욱 씨(63·DJ)

“1979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히트 치면서 디스코 열풍이 불었죠. 이후 1980년대 들어 터치 바이 터치, 도쿄 타운, 타잔 보이 같은 음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마침 유행하기 시작한 디스코클럽에서 LP 음반으로 노래를 틀었거든요. 곡의 인기와 함께 음반도 엄청나게 팔리던 시기였죠.”―한용진 씨(65·Cino music 대표)

“레코드 가게에서 잔뜩 진열된 LP를 고르는 맛도 괜찮았어요. 유명하지 않은 가수의 앨범을 모험 삼아 사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가수들이 곡과 함께 앨범 디자인도 많이 신경을 써서 그것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지요. 조용필같이 오랜 기간 많은 앨범을 낸 가수는 시대별로 음악적 원숙미와 함께 얼굴이 변하는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김정은 씨(55·주부)

“초등학생 때, 형수님이 휴대용 턴테이블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 당시엔 굉장히 귀한 물건이어서 가지고 다니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 좋았어요. 신나서 옆 마을 친구 집에 가지고 가 LP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춤추던 기억이 나네요.”―김종록 씨(54·문화국가연구소 대표)
 
세월과 함께하는 LP
 
“요즘 가장 비싼 LP는 김광석 4집이에요. 보통 5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초판은 100만 원까지 나갑니다. 재작년만 해도 15만 원이면 샀는데 그 사이에 3배 이상으로 오른 거예요. 명곡이 많이 들어있는 앨범이기도 하지만 김광석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의미 때문에 수요가 많습니다.”―박형수 씨(59·중고오디오 판매상)

“예전엔 LP 1장당 5000원에 팔아서 500원 정도 남겼다면 요즘은 음반 가치에 따라 몇 만 원부터 몇 십만 원까지 가격이 올랐어요. 그래서 과거에는 박리다매식으로 팔았다면 요즘엔 좋은 음반을 구해 제값을 받아 최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습니다.”―박인선 씨(57·장안레코드 대표)

“4년 전부터 LP 제작기술을 배웠습니다. 국내에서 사라진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을 보유한 분들을 만나는 게 엄청 어려웠죠. 2004년까지 LP를 제작했던 서라벌 레코드를 찾아갔는데 거기 아파트가 들어서 있더라고요. 어떻게 옛날 사장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드렸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배우느냐’며 의아해하더군요.”―백희성 씨(44·LP 제작기술자)
 
화려한 변화

“해외에선 LP를 이용해 시계나 의자도 만들고, 아예 LP판을 벽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죠. 모던함을 추구하는 현대건축에서 LP판은 깔끔하면서도 눈에 잘 띄는 훌륭한 아이템입니다.”―최성광 씨(49·업사이클링업체 솔리누 대표)

“영국에서는 ‘LP 생일축하 카드’가 인기입니다. 카드를 조립하면 종이로 만든 턴테이블을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지름 17cm짜리 작은 LP를 올려 손으로 돌리면 녹음된 메시지가 나오죠. 마니아를 중심으로 LP판 인기가 오른 요즘 분위기 덕을 많이 본 거 같아요.”―팀 코트넬 씨(35·영국 LP 축하카드 제작업체 대표)

“고급 LP는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마니아들은 스트리밍 음악보다는 음반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고, 비싼 오디오에 고음질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해요. LP는 그 자체로 소장 가치가 높습니다. 고급 플라스틱을 재료로 사용한다거나 최고 음질의 LP를 만들어낸다면 비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오디오 마니아들의 욕구를 채우는 최적의 매체가 될 거예요.”―박성수 씨(53·웹진 소니투스 편집장)
 
모두가 즐기는 LP

“최근엔 중장년층과 청년층 모두 LP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중장년층은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면 젊은 세대는 호기심 때문이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가 한 점에서 모이는 건 LP문화만의 특징입니다.”―박은석 씨(46·대중음악평론가)

“연령별로 방문객 수를 보면 10대에서 50대까지 고르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박람회 현장에 있으면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LP에 관심을 갖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LP로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어린 소비자들이 새로 유입되고 있어요. 1년에 한 번, 모든 세대가 LP로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도록 박람회를 계속 열 겁니다.”―김민규 씨(46·서울 LP페어 대표)

“LP판을 직접 골라 턴테이블에 올리고, 기계를 돌리는 방식이 새롭고 재밌었어요. 고르면서 재킷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문화생활이라고 하면 영화 보고 카페 가는 게 전부잖아요. LP를 접할 기회만 많아진다면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생활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성유민 씨(24·IT 컨설팅 업체 근무)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광복 직후엔 LP 생산 기술이 없어서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LP를 재활용했다고 해요. LP를 햇볕에 오래 놔두면 말랑말랑해지는데, 그때 홈을 지우고 새로 홈을 팠다는 거죠. 완성도가 높지 않아서 음악 중간에 일본 노래가 나올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요.”―지명길 씨(76·작사가)

“예전엔 미군 PX를 통해서 수입 LP가 유통됐어요. 장인어른이 미군부대에서 책을 얻어 파는 일을 하셨는데 LP도 한두 장씩 얻어 같이 팔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정식으로 음반이 들어오던 때가 아니라 장인어른이 수입 음반을 구하는 중요한 통로였다고 해요.”―이석현 씨(49·리빙사 대표)

“무엇보다 LP의 가장 큰 매력은 좋아하는 앨범을 고를 때의 설렘, 그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여유, 약간의 잡음과 함께 노래가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원하는 곡을 바로 들을 수 있는 CD나 휴대전화, 컴퓨터로 듣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죠. 물론 LP도 바늘을 움직여 원하는 곡을 들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음반 전체를 들으니까요.”―심준보 씨(37·회사원)

“현재 국내에는 LP를 찍는 공장이 없어서 LP를 재발매하는 사람들은 해외 공장을 이용해요. 보통 독일과 체코를 선호하죠. 공장은 미국에 가장 많지만 만드는 데 27주나 걸린대요. 독일과 체코는 12주 정도거든요.”―박주혁 씨(35·LP 매장 Alouette 대표)

“LP가 동그랗고 검은색이라는 것도 이젠 편견이에요. 요즘은 앨범 콘셉트에 따라 LP의 색과 모양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거든요. 스타워즈 OST LP 같은 경우는 영화 제목과 캐릭터 이미지가 LP 위에 프린팅돼 출시됐어요. 저희 매장을 찾아 다양해진 LP 디자인을 보신 분들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이죠.”―박모 씨(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 관계자)
  
오피니언팀 종합·전우철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lp의 추억#lp 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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