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의 붉은 지붕 파도, 킹스랜딩을 걷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3일 16시 17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부른다.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동쪽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내해(內海)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보인다.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번성하고,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로가 되었던 문명의 교차로.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킹스랜딩의 촬영지였던 두브로브니크를 찾아가 보았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유럽의 기와지붕은 왜 붉을까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시아(Dalmatia) 지역에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같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까지 번성했던 유서깊은 해안도시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점박이 개 품종인 ‘달마시안’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파도가 낮고, 해안이 부드러웠던 아드리아해는 중세 상인들에게 완벽한 무역로였다. 베네치아의 배들은 아드리아해를 횡단해 달마시아의 도시들과 무역을 하며 번성했다. 두브로브니크 해양박물관에 가면 아드리아해를 ‘베네치아만(Gulf of Venice)’으로 칭했던 중세의 지도가 여러장 남아 있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두브로브니크에 갔다면 성벽에 올라가 올드타운을 한바퀴(총 2km) 돌아야 한다. 이유는 딱 한가지. ‘붉은 지붕’의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중세 베네치아의 영향권에서, 이후 오스만 제국의 위협 속에서, 20세기 초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로서, 그리고 1990년대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두브로브니크는 살아남았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는 도시의 정체성이 된 붉은 지붕을 철저히 보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778m)에 올라가보면 크리스탈 블루와 에머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드리아해를 볼 수 있다. 케이블카가 점점 높이 올라가는 4분30초 동안 올드타운의 붉은 기와지붕들의 기하학적 패턴이 드러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드리아 해에 뿌려진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유명한 세 개가 엘라피티 제도(Elaphiti Islands)의 로푸드, 콜로첩, 시판 섬이다. 두브로브니크 왼편에 있는 로크룸 섬을 오가는 배들도 하얀색 파도자국을 남긴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유럽의 테라코타(흙을 구워서 만드는 벽돌, 기와, 도기)는 왜 붉을까. 산화철(Fe₂O₃)을 함유한 흙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마에서 약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우면, 흙 속 철 성분이 산화되면서 오렌지색에서 적갈색에 이르는 다양한 붉은 톤의 색상이 발현된다. 철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붉게 녹스는 원리처럼, 흙 속의 철 성분도 고열의 가마 속에서 산화된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기와는 검은색이다. 한국의 기와는 아궁이에서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숯불로 구울 때, 가마 안의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불완전 연소를 시킨다. 그러면 산화철이 검은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숯불의 온도를 1도 단위로 조절하며, 언제 불을 살피고 언제 숨을 쉬어야 하는지를 감으로 아는 장인만이 가능한 방법이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킹스랜딩이 눈 앞에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을 걷다보면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드라마 속 배경지인 ‘킹스랜딩’이 바로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두브로브니크 필레게이트 아랫쪽 필레만 항구.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두브로브니크 필레게이트 아랫쪽 필레만 항구.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블랙워터만 항구.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블랙워터만 항구.
현지 가이드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이 성벽의 서쪽 문인 필레 게이트 아래 항구였다. 드라마 속에서 ‘블랙워터 만(Black Water Bay)’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는 높은 성벽과 계단이 있고, 라니스터,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왕좌의 게임’ 속 블랙워터만.
‘왕좌의 게임’ 속 블랙워터만.
왕좌의 게임 촬영지인 두브로브니크 필레만 항구.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왕좌의 게임 촬영지인 두브로브니크 필레만 항구.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 필레만은 드브로브니크가 수도였던 중세 라구사 공화국이 해상 방어와 무역의 중심으로 삼았던 전략적 요충지다. 현재는 일반 관광객들이 카약을 타거나 보트를 탈 수 있는 수상 스포츠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필레만의 서쪽에는 37m 높이의 거대한 절벽 위에 로브리예낙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붉은 성’으로 나왔던 성채다. 필레만의 동쪽에는 포트 보카르(Fort Bokar)라는 또 다른 요새가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한바퀴 돌다보면 보카르 성벽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필레만의 경치는 절경이다. 올드포트 항구에서 배를 타면 갈 수 있는 로크룸 섬에는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철 왕좌’가 실제로 전시돼 관광객들이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성이그나시우스 교회 앞 ‘예수회 계단’은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가슴 아픈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가 머리를 깎이고, 벌거벗긴채 군중의 조롱 속에 걸어갔던 ‘수치의 행진(The Walk of Shame)’ 장면이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극중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왕국의 왕비였던 세르세이 라니스터. 권력을 잃고 셉트 성당에서 붉은 성까지 ‘참회의 행진’을 한다. 킹스랜딩 시민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Shame!”을 외치며 손가락질을 하고, 음식물을 던진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레나 헤디는 ‘몸 대역’을 썼다고 한다. 레나 헤디는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은 채로 약 500명의 엑스트라들 사이를 다녔고, 1000명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대역에 선정됐던 레베카 반 클리브가 나체로 사흘간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


특수 효과 전문가들은 레나 헤디의 얼굴을 레베카의 신체에 디지털로 입혀 놓았다. 할리우드 무명배우였던 레베카는 이후 스타워즈 에피소드 ‘최후의 제다이(2017)’에 출연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르세이의 ‘수치의 행진’ 장면은 실제로 1486년 6월 에드워드 4세의 정부(情婦)였던 제인 쇼(1445~1527)라는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4세의 사후 왕좌를 찬탈한 형 리처드는 동생의 정부인 제인을 간음죄와 마녀 혐의로 체포했다.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제인 쇼어의 참회’.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제인 쇼어의 참회’.

그녀는 ‘공개 참회’ 형벌을 받았고, 반투명한 흰 튜닉만 입고 세인트폴 대성당부터 런던의 거리를 행진해야 했다.
두브로브니크 프란체스코 수도원 중정 앞 복도.
두브로브니크 프란체스코 수도원 중정 앞 복도.
두브로브니크 필레게이트 앞 광장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에는 중세 시절 수도사들이 연금술을 연구한 불로불사 영약인 ‘엘릭서(Elixir)’ 제조에 대한 기록이 많다. 수도원 입구에는 1317년에 설립된 약국이 있다.

두브로브니크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약제 제조 전시관.
두브로브니크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약제 제조 전시관.

피렌테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약국(1221년)이 더 오래됐지만, 이 약국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수도사들의 200년 된 레시피로 허브와 오일을 활용해 만든 장미 크림이 유명하다.

●크로아티아 전통요리 ‘페카’

페카를 조리하는 숯불 화덕.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페카를 조리하는 숯불 화덕.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크로아티아는 지중해 연안의 발칸반도 국가다. 그래서인지 신선한 올리브와 치즈, 와인을 곁들인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크로아티아 전통음식인 ‘페카(Peka)’는 꼭 한번 맛볼만하다.

송아지 페카
송아지 페카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뒷골목에 있는 ‘로컬 페카(Lacal Peka)’에 가면 준비하는데만 5~6시간 걸리는 송아지 페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종모양의 철제 뚜껑이 있는 용기 안에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로즈마리, 올리브유, 와인,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넣고 숯불로 익히면 안에서 각종 재료가 향이 어우러진 찜같은 요리가 완성된다.

문어 페카
문어 페카

한국의 뚝배기 찜과 비슷한 맛이라고할까. 특히 마랑군 레스토랑에서 맛본 문어요리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었다. 페카 요리 전에 맛볼 수 있는 크로아티아 ‘프로슈토’는 돼지 넓적다리를 아드리아해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숙성시켜 깊이 있는 맛이 난다.

프로슈토
#크로아티아#두브로브니크#아드리아해#왕좌의 게임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