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개인이 희생해야 경제발전” 독재를 위한 속임수였다

  • 동아일보

◇전문가의 독재/윌리엄 이스털리 지음/김홍식 옮김/592쪽·2만5000원/열린책들

 최근 국정 역사교과서 파동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공과(功過) 평가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수십 년 동안 독재정치와 경제성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것은 소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로도 기능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대한민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단계에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과연 저발전 상태에서 경제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효율적인 자원 배분 차원에서 독재정치를 감수해야 하는가.

 세계은행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는 ‘권위주의 발전’은 허상이라고 단언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잠시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애초부터 독재자의 속임수에 불과하며, 실제로 통계를 분석해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개도국들의 저성장은 대부분 독재자들의 집권기에 나타나며, 특히 독재 기간과 성장률을 정밀 분석하면 호황은 이미 독재자들의 임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가령 한국의 경우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의 노태우가 독재자들이지만, 한국의 성장률 자료는 이 세 사람의 집권기 자료들이 거의 전부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의 정책보다는 한국의 조건과 사건이 더 중요했을 공산이 크다.

 그는 권위주의 발전의 뿌리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근대화’를 내세운 서구 제국주의에서 찾는다. 제국주의 논리가 현재에 이르러 개도국 독재자들과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발전기구로 계승됐다는 얘기다.

 오히려 진정한 경제발전은 개인들이 각자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게 이 책의 골자다. 자유로운 개인이 모여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도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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