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의 계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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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자연으로서는 긴 여름의 괴로운 더위를 지나 맑은 기운과 서늘한 바람이 비롯되는 때요, 인사(人事)로서는 자연의 그것을 따라 여름 동안 땀 흘려가며 헐떡이던 정신과 육체가 가쁘고 피곤한 것을 거두고, 조금 편안하고 새로운 지경으로 돌아서게 되는 까닭이다.”(한용운, ‘독서 삼매경’)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을 연상한다는 친구를 만나 어제는 즐겁게 입씨름을 했다. 내 반론인즉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비독서지절(非讀書之節)이라는 것.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긴 가을밤에 책장 넘기는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다. 얼마나 책하고 인연이 멀면 강조 주간 같은 것을 따로 설정해야 한단 말인가.”(법정, ‘비독서지절’)

만해 스님과 법정 스님의 의견이 상반되어 보이지만, 두 분 말씀은 모두 합당하다. 가을의 기후와 분위기는 독서에 적합하지만 야외 활동하기도 좋은 때이고 보니 책과 멀어지기도 쉽다. 실제로 가을은 도서 판매 비수기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자’는 취지에 가깝다.

우리 땅에서 ‘독서의 계절’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중반부터였다. 1927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의 평양부립도서관 관련 기사는 “6월 초순경에는 건축공사에 착수하여 9, 10월경에 준공됨을 따라 설비를 빠르게 하여 독서의 계절인 추기(秋期)를 놓치지 않고 문을 열 작정”이라 전한다. 오늘날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과 그 시행령에서도 ‘독서의 달은 매년 9월’로 지정되어 있다.

“때는 가을이라 장마는 물러나고 산뜻한 바람 가득하니, 등불 가까이하고 책 펼칠 만하다.” 중국 당나라의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공부를 권하는 뜻으로 지은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의 구절이다. 어찌 가을뿐이랴. 남송 말기, 원나라 초기의 문인 옹삼(翁森)이 ‘사시독서락(四時讀書樂)’에서 사계절 독서의 운치와 즐거움을 말한다.

“세월 헛되이 보내지 말지니 아름다운 봄날이 흘러감에 오직 책 읽는 즐거움이 있을 뿐. 긴 여름 낮 책 읽은 뒤 매미 소리 그치니 즐거움은 끝이 없어라. 지난밤 앞뜰에 잎 지는 소리 들리더니, 가을 품은 모든 소리 적막한 가운데 책 읽는 즐거움 비길 데가 없구나. 깊은 밤 큰 눈 쌓이고 화로에 찻주전자 끓어오르니, 책 읽는 즐거움 어찌 다른 데서 찾을까.”
 
표정훈 출판평론가
#독서#가을#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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