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호황의 흉한 뒤끝 솔직하게 드러내

  • 동아일보

국가관 황금사자상에 스페인관 ‘미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개막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페인관(위 사진)은 자국 건축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내 호평받았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좌초된 건축 프로젝트의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 것. 아래 사진은 본전시 황금사자상을 받은 파라과이 건축가그룹 ‘가비네테 데 아르키텍투라’가 선보인 대형 벽돌 구조물.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스페인관(위 사진)은 자국 건축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내 호평받았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좌초된 건축 프로젝트의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 것. 아래 사진은 본전시 황금사자상을 받은 파라과이 건축가그룹 ‘가비네테 데 아르키텍투라’가 선보인 대형 벽돌 구조물.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말(言)의 건축전. 28일(현지 시간) 개막해 11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제15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현재의 건축에 대한 온갖 말의 도가니로 구현됐다. 시선은 명료하다. 저소득층 주민 참여 방식의 도시재건축 활동을 펼쳐 온 비엔날레 총감독 알레한드로 아라베나(49·칠레)는 전시장 초입에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 메시지를 걸어놓았다.

“석고보드 1만 m²와 금속제 사잇기둥 14km. 출입구 공간에 쓴 이 자재는 지난해 비엔날레 미술전 폐막 후 설치물을 해체하며 나온 쓰레기 100t을 재활용한 것이다.”

그 문구 옆에는 이번 비엔날레 준비 과정에서 폐기된 첫 주제 제안서에 큰 가위표를 쳐 걸어놓았다. ‘지옥-연옥-천국’이라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타이틀을 버리고 선택한 주제는 ‘전선(前線)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83)가 큐레이터를 맡은 베네치아관은 ‘도시 살리기(Saving the City)’라는 주제 아래 빚은 말을 전시실 벽면에 굵게 새겨 그 전선에 참여했다.

‘아마존 전선’을 주제로 국가관 특별언급상을 받은 페루관(맨위 사진), 본전시 은사자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 건축가 쿤레 아데이에미가 물 위에 만든 목재 학교(중간 사진), 지난해 비엔날레 설치물을 뜯어내며 얻은 폐기물로 만든 본전시 출입구 공간(맨 아래 사진). 베네치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마존 전선’을 주제로 국가관 특별언급상을 받은 페루관(맨위 사진), 본전시 은사자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 건축가 쿤레 아데이에미가 물 위에 만든 목재 학교(중간 사진), 지난해 비엔날레 설치물을 뜯어내며 얻은 폐기물로 만든 본전시 출입구 공간(맨 아래 사진). 베네치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세계 인구 25%가 집을 갖지 못했거나 슬럼가에 거주한다. 빈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공공의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아닌 정부가 미래를 염려하는 계획을 바탕으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참여 국가와 작가들은 누구나 옳다고 여길 법한 이런 ‘말’이 실제 건축 현장에서 요원해진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일회용 비닐봉투를 벽면 장식재로 쓰고 녹슨 폐품 철판을 디스플레이 패널로 삼거나(칠레), 온갖 건축 폐자재를 천장에 매달아 커다란 난파선 모양의 설치물을 꾸미고(터키), 당면한 난민 문제에 대한 참가자들의 견해를 묻는 칠판과 분필을 전시실 벽에 빙 둘러 설치했다(그리스).

28일 오전 열린 개막식 겸 시상식에서 아라베나가 선정한 최고의 모범 답안은 스페인관이었다. 국가관 황금사자상에 선정된 스페인관의 주제는 ‘미완(Unfinished)’. 전시실 벽면에 촘촘히 붙여놓은 건축 프로젝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착공돼 현재까지 완공되지 못한 수많은 건물을 보여준다. 버블 호황에 취해 부동산 개발업자가 마구잡이로 뿌려놓은 화려한 청사진이 얼마나 흉한 골칫거리가 됐는지 확인시키며 재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본전시에서는 파라과이 건축가그룹 ‘가비네테 데 아르키텍투라’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붉은 벽돌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대규모 구조물을 만드는 평소 작업을 전시실에 그대로 가져온 3인의 건축가에 대해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빈곤한 국가에서 쉽게 활용될 수 있는, 쉽고 효율적인 건축구조 기술을 제안했다”고 평했다. 은사자상 역시 자신들의 실제 작업을 전시공간에 재현한 건축가에게 돌아갔다. 수상자인 나이지리아 건축가 쿤레 아데이에미는 전시장 밖 아르세날레 부두에 수상(水上) 목재 학교를 지었다. 그는 나이지리아 연안에 같은 형태의 수상 학교 시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국가관 특별언급상에는 페루와 일본이, 본전시 특별언급상에는 이탈리아의 마리아 주세피나와 그라소 칸니초가 선정됐다. 아라베나가 우수 국가관 7개 중 하나로 꼽았던 한국관과 본전시 참여 작가 최재은 씨는 수상에 실패했다.
 
베네치아=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버블호황#국가관 황금사자상#스페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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