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한번 없이 1시간반 즉흥연주…‘장구-드럼 듀오’ 앨범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2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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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고수(鼓手) 중 한 명인 김청만 씨(69·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과 프리재즈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 씨(54·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가 함께 사상 초유의 장구-드럼 듀오 앨범 ‘레코즈&리코딩스(RECORDs & RECORDINGs)’를 14일 낸다.

앨범에는 1월 27일 저녁 서울 상암동 녹음 스튜디오에서 두 명인이 1시간 반 동안 벌인 즉흥연주가 담겼다. 굿거리, 자진모리, 엇모리(QR코드) 같은 우리 고유의 장단을 바탕으로 하되 사
전 연습 한 차례 없이 한 방에 완성한 줄타기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명달로 일통고법보존회(이사장 김청만)에서 만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드럼 스틱과 장구채를 잡았다. 두 개의 악기, 네 개의 손에서 피어난 울림은 하나의 심장에서 나온 듯 서로를 얽었다. 파격이되 서로를 깨뜨리지 않는 파격.

둘의 교류는 2012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시작했다. 당시 박 씨는 아내인 피아니스트 미연부터 명창 안숙선, 고수 김청만, 꽹과리 이광수까지 다섯이 어우러진 시나위 ‘조상이 남긴 꿈’을 기획 연주했다. 박 씨의 생각은, 무수한 장단의 언어를 갖고 여유와 흐드러짐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하는 고법(鼓法·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방법)과 드럼이 듀오를 하면 대단하겠다는 데 닿았다. 파트너로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 선생도 단박에 ‘오케이’. “박재천이는 우리 장단 다 꿰고 있으니 믿을 만허지!”

박재천은 록, 프리재즈, 국악까지 여러 판을 뒹굴고 드럼과 장구를 30년간 병행하다 새 드럼주법 ‘코리언 그립(채 잡는 법)’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그는 “장구의 왼쪽 면을 잡고 풀며 음가(音價)를 조정하는 우리 장단을 표현하려다보니 자연스레 검지가 위로 올라가는 ‘코리언 그립’이 나왔다”고 했다.

명고수란 애당초 지휘자요, 편곡자요, 즉흥연주자다. 김 씨는 안숙선, 이매방 같은 명창의 호흡에 실시간으로 장단을 덧대며 60년간 밀고 당겼다. “이를테면 굿거리는 ‘3×4=12’ 같지만 ‘3-3’으로 가다 ‘2-2’로 가고, 그 속을 다시 ‘3-3’으로 쪼개면서 순식간에 변형해나가는 거요. 숫자놀음이죠.”(김청만)

“드럼이 비트의 악기라면 장구는 풀림의 악깁니다. 드럼이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 두 방향성을 지닌 5대5 숫자놀음이라면 장구는 옆으로 치니까 3대3대3 개념이죠.”(박재천)

때림과 멎음 사이에 뚫린 상대의 무수한 숨구멍을 어떻게 채우고 빠지느냐. 타악 인생 노하우를 업고 순발력을 덧대야 하는 살 떨리는 게임이었다. 녹음 뒤 둘은 각자 몸살을 앓았다.

김 씨는 “연주하면서 쾌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박 감독이 알심 있게 잘 하더라고. 나야 가진 보따리 다 풀어놨으니까…. 칠순에 타락한 국악인이라고 누가 욕할까 싶어 솔직히 겁은 좀 나네요. 허허허.”

둘의 듀오 연주는 올해 딱 세 곳에서만 들을 수 있다. 첫 무대는 27, 28일 오후 7시 반 서울 강남구 남부순환로 EBS 스페이스공감.(02-526-2644) 8월 21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02-580-3300), 12월 4일 서울 옥인동 ‘공간서로’(02-730-2502) 무대가 뒤따른다.

다른 난해한 음악들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최대한 크게 들어야 가까이 갈 수 있다. 신비한 소리 숲의 빛나는 심장 쪽으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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