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헤밍웨이·에코·하루키를 만나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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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신을 믿으시나요? / 움베르토 에코 : 사람들은 어째서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다음 날 그 사랑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슬프게도 감정이란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그리고 자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랍니다. -‘작가란 무엇인가’(파리 리뷰·다른·2014년)》

카페에서 신문을 읽고 만년필로 편지를 쓰는 것은 이제 남의 눈에 띄는 일이 됐다. 정보기술(IT) 시대에 ‘글’이라는 건 조만간 화석으로라도 남아버릴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쪽 장편소설의 한 자 한 자를 곱씹는 것은 상당히 황홀한 경험이다. 언젠가 그 문장을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을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그렇게 활자 너머에서만 만나왔던 이들을 눈앞으로 데려온다. 이미 우리 세상을 떠난 이들도 포함해서다. 1953년 창간된 ‘파리 리뷰’지의 기자들은 움베르토 에코,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난다. 그들의 17세기 저택을 찾아가고, 낡은 승강기를 타고, 입에 물고 있는 시가를 본다.

글이 아니라 말을 통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신기하고 정겹다. 헤밍웨이는 푸근한 아저씨처럼 말을 하고 하루키는 뚝뚝 자른 대답을 한다. 에코는 중세 교회에 천착한 소설을 썼지만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잡동사니가 놓인 책상 앞에서 그들과 마주앉아 듣는 이야기는 책장보다 훨씬 가볍고 평화롭다.

이 책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다. 이미 전 세계에 이름을 전한 이들도 여전히 매일 아침 ‘작업장’인 책상 앞에 서는 고독함과 막막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만년필로 쓴 원고를 일일이 타자기로 다시 치거나, 그날그날 쓴 단어의 수를 칠판에 적거나, 한 페이지를 39번 고쳐 쓰기도 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책장 뒤에 숨겨져 있다.

소설가 김연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썼다. “그게 소설이든 시든,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어느 날 마음속에 불길이 인다면, 활자 너머의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곽도영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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