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쁜 당신, 화난 나… 트라우마 치료 어렵지 않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6일 03시 00분


안구운동-버터플라이 허그의 기적

◇트라우마, 내가 나를 더 아프게 할 때/프랜신 샤피로 지음, 김준기 등 옮김/412쪽·1만6000원·수오서재

영화 ‘굿윌헌팅’(1997년)은 트라우마에 빠져 비참한 생활을 하는 천재 윌 헌팅(맷 데이먼)을 심리학 교수인 션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교감과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는 내용이다. 맥과이어는 헌팅이 누구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동아일보DB
영화 ‘굿윌헌팅’(1997년)은 트라우마에 빠져 비참한 생활을 하는 천재 윌 헌팅(맷 데이먼)을 심리학 교수인 션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교감과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는 내용이다. 맥과이어는 헌팅이 누구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동아일보DB
어릴 적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사무치도록 가슴에 새겨진 기억이 있는지, 아니면 초등학교 때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벤도 그랬다.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하려고 하면 입이 굳어버리는 증상을 가진 남자. 자신도 몰랐지만 그의 기억 어딘가엔 만 세 살 무렵 할아버지와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을 거닐며 조잘조잘 떠들던 그에게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다가와 “만약 내게 이렇게 수다스러운 손자가 있었다면 개울에 처박아 버렸을 거야”라고 한 말이 남아 있었다. 이후 그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 이후 초등학교 때 발표할 때마다 말더듬이가 됐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가장 큰 2차 피해는 가족과 살아남은 학생, 그리고 온 국민이 겪어야 할 트라우마다. 우리에게 깊숙이 각인된 상처는 언제 어디서 다시 드러날지 모른다.

그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PTSS)을 위한 치료법이 각 언론에서 소개됐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이 바로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다.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번역되는 이 치료법은 이 책의 저자인 PTSS 전문가 프랜신 샤피로 박사가 20여 년 전 본인의 경험을 통해 개발한 것이다.

안구를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과거의 부정적 기억을 떠올리면 그 기억에 대한 부정적 느낌이 사라진다는 것. 프랜신 박사의 이 논문에 대한 반응은 어이없다는 쪽이 많았다. 그처럼 간단한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임상시험 결과는 이 단순한 방법의 효과를 입증했다. 프랜신 박사는 이 방법을 비롯해 안전·평온지대 기법, 나선형 기법, 페인트통 기법, 만화캐릭터 기법, 버터플라이 허그 기법, 호흡전환 기법 등 다양한 방법을 개발 발전시켰고 현재는 가장 효과적인 트라우마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7만 명의 치료사가 양성됐고 수백만 명이 상담을 받고 상태가 호전됐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것은 기억이 뇌의 정상적인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생생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한 환경이 주어지면 그때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뇌의 통제를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벤과 같은 발표 불안은 물론이고 공황장애, 우울증, 부부갈등, 집착 등 대부분의 심리적 결과가 이런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 책임이 아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책은 트라우마에 대한 자가 치유법과 얼마든지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준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가치 없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내가 그에게 왜 아무것도 못 해줬을까 등등의 느낌을 갖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에도 관련 단체가 있다. 서울EMDR트라우마센터(www.seoulemdr.co.kr)
: 버터플라이 허그 :

허리케인으로 가족 친구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지켜본 멕시코 아동을 위해 개발된 방법.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오른손을 왼쪽 어깨에 올린 뒤 부정적 기억들을 떠올리며 4∼6회 어깨를 두드린다. 이것이 한 세트로 심호흡으로 마무리한다. 5차례 정도 반복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책의향기#트라우마#버터플라이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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