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65년전 창경궁 식물원, 그곳에 다시 서다

  • 동아일보

65년 전, 제가 태어나기도 전 부모님이 서 계셨던 창경궁 식물원 그곳에 남편과 함께 섰습니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네요. 창경궁 식물원 앞은 아주 조금 달라졌습니다. 손자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식물원에 오신 맘 좋은 분이 “제가 찍어 드릴게요” 하며 찍어 주셨어요.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지 잘 도와요. 그렇죠?

30여 년 전 큰애 돌 때 ‘창경원’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습니다. 궁으로 변하고는 처음 갔는데 많이 달라졌더군요. 예전엔 ‘소풍’ 하면 창경원이었지요.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 부부는 감탄을 연발했어요. 여긴 원숭이우리, 저긴 낙타우리, 연못가의 음식점, 보트, 모욕의 역사….

지금은 무엇보다 벚나무가 하나도 없는 게 기분 좋았습니다. 기품 있는 소나무가 벚나무 자리에 가득 차 있더군요. 우리 소나무가 이리도 멋있을 줄이야. 창경궁이 이제야 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듯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식물원 앞에 서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손자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고 창경궁에 온 것을, “백송마을 어린이, 백송 앞에서 사진 찍어요” 하며 놀던 그 순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 말입니다.

다른 사진들은 지금은 없어진 종로 2가 화신백화점 계단과 종로 거리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사진 속 그 꼬마가 지금은 할머니가 됐습니다. 사진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낍니다.

요즘은 카메라가 흔하지만 그때는 귀해서 거리에서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어주곤 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명딸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명동 국립극장에서 심청전을 보고 와서 “청아∼” 하며 심봉사 흉내를 잘 냈다는 제가 지금은 손자들의 말춤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박천식 씨(서울 성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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