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웃음의 계보학(하)

동아일보 입력 2011-02-11 13:58수정 2014-08-27 16:3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스로를 바보로 희화화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영구는 유머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인생이란 위트 아니면 아이러니요."

지난 연말과 올 초 공연된 연극 '미친극'(최치언 작)에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웃음의 계보학(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인생이 비극이라기보다 희극이라는 점을 절묘하게 포착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위트와 아이러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 둘은 전편에서 말씀드린 유머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말로 흔히 기지로 번역되는 위트(wit)는 유머(해학, 익살)의 일종입니다. 전편(웃음의 계보학 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머가 좋은 기질을 뜻하는 영어 '굿 유머(good humor)'에서 나왔다면 위트는 '알다'라는 낱말밭에 속하는 독일어 'der witz'에서 유래했습니다. 프랑스어 e¤sprit와도 대체될 수 있는 이 말은 순발력 있게 정곡을 찔러 짧은 순간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예리한 지적 능력을 뜻합니다.
MBC 표준FM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삼국지 편>의 두 진행자. 삼국지 등장인물을 현대적 캐릭터로 바꿔쳐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의 웃음코드가 바로 위트다.

우리말에선 유머와 위트가 큰 차별 없이 쓰이고 있지만 서양에서 뉘앙스 차이가 큽니다. 유머가 주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유쾌하게 관조할 줄 아는 넉넉한 품성에서 발현된다면 위트는 사람들의 통념에 일침을 놓거나 의표를 찌를 줄 아는 번뜩이는 지적 능력에서 꽃을 피웁니다. 즉 유머에 비해 좀더 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예리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위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러니는 뭘까요? 그리스어로 위장(僞裝)을 뜻하는 에이로네이아(eironeia)에서 유래한 이 말은 겉과 속의 상호 모순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외부 규정과 그 내밀한 속사정의 상호 충돌을 보여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말로는 실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반대의 표현에 담아낸다고 해서 반어(反語)라고도 하고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그 속에 단긴 뜻이 반대라는 뜻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도 번역됩니다.

주요기사
아이러니는 표리의 차질을 폭로해 쓴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유머와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날카로움과 간접적 공격성을 띤다는 점에서 위트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쓴웃음 뿐 아니라 속울음도 함께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유머나 위트와 다릅니다. 한쪽 눈으론 웃고 한쪽 눈으론 울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전편의 글에서 유머라는 개념의 등장과 더불어 타자에 대한 조롱과 공격의 신호였던 웃음이 타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신호로 일대 전환을 이뤘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검토했습니다. "진정한 유머리스트는 자신과 비슷한 어리석음을 잘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아니면 인류 전체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비웃지 않는다"는 독일 미학자 슈미트-히딩의 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유머리스트는 웃음에 숨겨진 공격성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기 자신' 아니면 '우리 모두'를 희화화한다는 것입니다.
KBS2TV <개그콘서트>의 <발레리-노> 코너의 캐릭터들. 남성의 특수부위가 도드라져 보이는 발레니노 의상의 약점을 감추려할수록 그 부분이 더 주목받는 이 코너의 웃음코드가 바로 아이러니다.

유머는 이렇게 '원초적 웃음'의 독소를 걸러내는 필터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트는 이런 유머의 필터링을 거친 '정화된 웃음'에 새롭게 톡 쏘는 맛을 가미한 '진화된 웃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머가 18세기경 그 의미를 확립했다면 위트는 그보다 100년 뒤인 19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의미로 확립된다는 연구결과로 뒷받침됩니다.

아이러니는 이렇게 유머와 위트로 이어지는 전통과 별개로 좀더 공격적인 풍자와 조롱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가 서양에선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미 그 원형을 드러낸 뒤 로마시대 키케로나 퀸틸리아누스에 의해 수사학 기법으로 확립된 독자적 전통을 지녔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는 씁쓸한 웃음과 허탈한 울음이 뒤섞인 '혼합된 웃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런 유머(위트)와 아이러니의 차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줬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제도와 법규 같은 규범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 규범이라는 것이 결국 인위적인 질서이다 보니 인간의 타고난 본성 내지 자연적 질서와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들뢰즈는 이런 경우 사람들이 규범에 저항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가학적 방식(사디즘)과 피학적 방식(마조히즘)입니다.

사디즘의 방식은 철저히 무시하고 정면 돌파하는 방식으로 규범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반면 마조히즘의 방식은 아무리 잘못된 규범이라도 그것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그 불합리성과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사디즘적 대응방식이 아이러니라면 마조히즘의 대응방식이 유머라고 설명합니다.
만화 영화 <톰과 제리>의 주인공들은 피학적인 유머와 가학적인 아이러니의 변증법적 웃음코드를 보여준다. 강자인 고양이 톰은 제리에게 늘 당하는 피학적 유머로 웃음을 끌어내는 반변 약자인 생쥐 제리는 톰을 놀려먹는 가학적 아이러니로 웃음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교통흐름을 돕기 위해 설치된 신호등이 오작동으로 오히려 교통흐름을 방해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대응합니다. 고장 난 신호등을 깨끗이 무시하고 맘대로 차를 몰거나 오히려 신호등의 엉터리 신호체계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엄청난 교통대란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사디즘적 대응이라면 후자는 마조히즘 대응입니다.

전자는 법규를 깨끗이 무시한다는 점에서 사디즘적 대응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방식을 들여다보면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교통 흐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어적 방식이란 점에서 아이러니컬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후자는 오히려 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손해인지를 자해적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조히즘적 대응입니다. 이 경우엔 법을 지키는 자기 자신을 광대로 희화화함으로써 교통법규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유머러스한 접근이 됩니다.

자 이런 분류를 희극 작품에 접목시켜봅시다.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사랑의 헛소동'은 중세 유럽의 나바르 왕국을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 원작을 조선시대로 번안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3년간 오로지 학문수행에만 힘쓰고 여자를 멀리하기로 맹세한 나바르 왕국의 왕자와 그를 따르는 젊은 귀족들이 프랑스 공주와 귀족여성에게 마음을 뺏겼지만 체면을 지키려고 이를 감추다 개망신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에선 가학적 아이러니와 피학적 유머가 교차합니다. 아이러니는 학문수행을 위해선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왕자의 명령을 지키자니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하고 그를 달래기 위해 사랑을 택하자니 귀족의 명예에 먹칠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반어적 상황에서 빚어집니다. 그 결과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붙잡기 위해 몸부림치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가학적 웃음을 발생시킵니다.
중세 유럽 나바르 왕국을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 원작 희극을 조선시대로 번안한 <사랑의 헛수고>. 한국연출가협회 제공

유머는 그들이 서로의 동병상련의 마음을 눈치 채면서 발생합니다. 왕자와 귀족 체면에 자신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대놓고 위반할 수 없는 그들은 단체로 여장을 하고 프랑스 여인들의 숙소로 잠입해 온갖 우스꽝스러운 짓을 벌이는 신세가 됩니다.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챈 여성들에 의해 온갖 희롱을 당하던 그들은 결국 스스로의 정체를 자복함으로써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자신들의 모토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됩니다.

이를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한 '사랑의 헛수고'는 진화된 웃음으로서 위트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금욕적인 중세 기독교 윤리관에 젖은 서양귀족을 역시 현실과 유리된 도덕관념에 젖은 조선시대 양반들로 바꿔 치면서 역사적 상황의 유희를 펼치는 지적 유희가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또 원작에서 성경이나 고대 그리스나 라틴어 경전을 인용하는 부분에 논어와 맹자, 대학 등의 텍스트로 바꿔치는 언어유희도 일품입니다.

전편에서 말씀드린 서양연극에서 귀족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스가펭-휘가로-피에로의 광대 코드가 이 작품에선 우리 마당극에서 위선적 양반문화를 풍자하는 돌쇠와 마당쇠 캐릭터로 표출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반면 공연 중간에 요즘 유행하는 다양한 걸그룹들의 노래와 춤을 모방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스테레오타입의 웃음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위트를 오히려 훼손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의 이웃국가인 바오카타국 여인들을 유혹하기 위해 탈을 쓴 무희로 변장한 양반들을 조롱하는 마당쇠.

유머와 위트, 유머와 아이러니의 이런 변증법적 웃음코드는 우리 창작희극 '국물 있사옵니다'와 '살아있는 이중생각하'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국물 있사옵니다'의 주인공인 평범한 샐러리맨 김상범은 서로 속고 속이는 '정글의 법칙'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피학적 유머의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합니다. 반면 '살아있는 이중생각하'의 기회주의자 이중생은 살기 위해서 죽어야하고 죽어야 살 수 있는 반어적 상황을 통해 가학적 웃음을 유발합니다.

두 작품의 한계는 유머와 아이러니 중 어느 한쪽 요소만 두드러지다는 점입니다. 우리 희극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두 작품을 보면서 유머와 아이러니가 교차할 때 세계에 대한 연민과 시대에 대한 풍자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쳤습니다. 각각 1960년대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이 현대적 호소력을 갖기 위해선 원작의 웃음코드를 현대화하는 위트가 넘쳐야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차 코미디 페스티벌에선 유머와 위트, 유머와 아이러니의 변증법으로 능수능란한 웃음을 풀어낸 보다 많은 창작희극을 만날 수 있기를.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