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용퇴 주장 대신 교회일치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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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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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 최홍준 회장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의 “주교단 결정은 우려이지 4대강 사업 반대는 아니다”는 발언에 반발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구사) 출신 신부들의 용퇴 주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이자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서울 평협) 최홍준 회장(68·사진)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본당 신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주임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물러나라고 하면 말이 되느냐”면서 “추기경의 용퇴를 주장할 게 아니라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천주교 평신도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국적인 협의체다.

최 회장은 “가톨릭교회는 교황과 주교, 평신도들이 일치하고 단결해 2000여 년간 지속돼 왔다”며 “정 추기경은 2006년 교구장직 사임서를 교황청에 제출했다. 그 결정권은 교황에게 있어 사제들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 성당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신부님의 강론으로 신앙상의 어려움과 불만을 호소하는 분이 적지 않다”며 “4대강 찬반이 종교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신자들이 양심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추기경의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서울 평협은 이날 회장단 모임을 개최해 의견을 모았고 이후 상황을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서울대교구의 한 신부는 “정구사나 추기경 용퇴를 주장한 사제들이 사실상 같은 분”이라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나쳤다”고 말했다. 교구 홈페이지에는 추기경 용퇴 주장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많은 가운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 신자는 “저 역시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현 정부도 싫지만 이런 식은 아닌 것 같다”면서 “(신부님들이) 정치적인 일에 마음을 쏟듯이 그 열정으로 본당 사목에 임해 달라”고, 다른 신자는 “4대강 문제에 대해 신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북한 문제에 대해 신자들에게 물어본 적이나 있냐”며 “원로라는 걸 내세우지 말고, 사제라는 걸 내세우지 말고, 사랑에만 충실하라”고 썼다. 반면 “추기경님께서 교회의 최고 어른이라 해도 주교단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월권행위를 했다면 교회의 분열을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출신 신부들의 정진석 추기경 용퇴 주장에 대한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의 게시판. 사진 제공 서울대교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출신 신부들의 정진석 추기경 용퇴 주장에 대한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의 게시판. 사진 제공 서울대교구
용퇴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교구에서도 비판적 의견이 나왔다. 인천교구의 한 신부는 “백번 양보해 특정 사안에 대해 신부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수는 있지만 용퇴 주장은 비판의 도를 넘어선 것”이라며 “4대강을 반대하는 일부 신부가 추기경의 권위에 흠집을 내며 정치인처럼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교구의 한 중견 신부는 “실제 논란이 되고 있는 주교단 성명을 보면 명확한 찬반 표현이 없어 해석의 여지가 많다. 이 같은 상황을 정리하고 신앙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주교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해당 교구장의 권한”이라며 “가톨릭교회가 교구 중심으로 운영되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교구장의 몫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제들이 추기경을 물러나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구장과 그의 승계자에게 순명(順命)한다’고 서약을 한 신부들이 기자회견의 형태로 교구장 용퇴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는 반응도 있다. 대구대교구의 한 중견 신부는 “교회법에서는 교구장의 유고 등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교구장인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자체다. 이는 추기경이 없다면 교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임면권을 갖고 있는 교황도 그 권한의 행사를 극히 신중하게 고려하는데 서울대교구뿐 아니라 다른 교구에 속한 신부들이 나서 용퇴를 주장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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