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씨 50세에 직장 사표내고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로 작가 데뷔
‘인간-닭’ 역전… 눈물나는 블랙코미디
기상천외한 연극이 등장했다. 극단 골목길의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 스페이스 오페라란 우주선이 등장하는 SF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작품이 서울 대학로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SF 연극임을 알 수 있다. 3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2050년을 무대로 우주선과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치킨이라니. 그 우주선은 하늘을 날며 특별한 닭고기를 팔러 다니는 ‘까망 치킨’이란 치킨집이다.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코미디다. 하지만 웃음코드가 기발하다. 유전자 변이로 인간보다 똑똑한 닭이 태어나 인간과 닭의 관계가 역전된다는 발칙한 상상력도 그렇지만 SF와 재즈, 일본 오타쿠 문화를 교묘하게 뒤집는 극적 장치들도 전복적이다.
‘까망 치킨’은 외계인이 가르쳐준 비법으로 요리하는데 그중 하나가 닭들에게 밤낮으로 들려주는 올드 재즈 넘버 ‘올 오브 미’다. “내 팔을 가져가요, 내 입술을 가져가요. 내 심장을 가져가요”라는 이 감미로운 노래의 영어가사가 그 순간 엽기적 웃음코드로 바뀐다. 게다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임이 드러나며 다시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인간의 지능을 가진 닭 ‘골든 콕’으로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 향숙이’란 대사로 유명해진 박노식 씨가 등장해 단 한 줄의 대사를 읊는다. ‘꼬꼬꼬.’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이 연극은 관객보다 소위 ‘하위문화’를 즐기는 사람에게 큰 웃음을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진지한 연극으로 정평이 난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이 홀딱 반할 전위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 소수의 열혈 관객에게 폭발적 반응을 끌어낼 컬트 연극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만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혼성 연극의 극작과 작곡을 맡은 김진우 씨의 이력. 그는 지난해 말 24년간 다니던 공기업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이번 작품으로 극작 데뷔한 쉰 살 아저씨다. 속칭 ‘신이 내린 직장’을 그만두고 이런 장르의 예술에 ‘다걸기’를 하기엔 쉽지 않는 나이다.
“우연히 2년 전에 적어뒀던 메모를 봤어요.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써있었죠. 까맣게 잊고 있던 걸 2년 만에 실천에 옮긴 겁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1989년 SF 작가로 등단한 뒤 1990년대 신문과 잡지의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했고 재즈앨범을 2개나 낸 뮤지션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1세대 재즈 피아니스인 김성림 씨(83)이고 아들은 2007년 동아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김재원 씨(22)다.
“남들은 편한 직장을 다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오해들을 하시는데, 실은 하루 다섯 시간밖에 안 자면서 새벽엔 원고를 쓰고 주말 시간은 모두 음악에 투입한 산물이었습니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밖에 낼 수 없는 게 늘 아쉬웠죠.”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창신동 작업실에서 장편소설을 준비하면서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를 위해 준비했던 사운드트랙 음반작업과 후속 희곡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 동년배들이 직장을 그만둔 뒤에 ‘치킨집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나’를 걱정할 때 치킨을 소재로 희곡을 쓴 게 의미심장하다.
“사실 제가 닭 마니아여서 지금까지 먹은 닭만 천 마리가 넘을 거예요. 닭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담아 ‘생명의 신께’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그게 이번 희곡의 모티브가 됐으니 닭들에게 거듭 고맙죠.”
공연은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게릴라극장. 1만∼2만5000원. 02-6012-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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