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종가 보관 공문서-일기 등 7 만여점 색인-목록 정리 마쳐 조선후기 지역생활사 연구 활용
금속활자 복원 사업도 벌여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은 영남지역에 산재한 고문서를 수집 정리해 관료 선비 향리 민중 여성 등 계층별 생활사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 5년간 고문서 7만여 점의 목록과 색인을 만들었다. 사진 제공 영남문화연구원
“관청에서 사무를 인계할 때 전하던 문서인 중기(重記)나 개인문집에는 잘 포함시키지 않던 일기에는 바로 그 시대 그 현장을 포착할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이런 고문서를 예단 없이 다시 꿰어 풍성하고 생생한 재현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9일 대구 북구 산격동의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에서 만난 황위주 원장(한문학)은 고문서를 통한 조선 후기 영남생활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00년 문을 연 연구원은 대학과 종가, 개인이 보관하는 고문서 7만여 점의 색인과 목록을 정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미세 생활사를 살피고 있다.
조선 사회에서 제수(祭需)로 송아지를 쓰는 경우는 종묘나 사직 등에 한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동제(洞祭·동네 제사)를 지내면서 송아지를 제수로 쓰는 것을 허락한 문서(연도 미상)가 나왔다. 경북 김천군 지례현 남면 덕산리 사람들이 고을 현감에게 “다른 마을과 달리 험준한 산 사이에 끼여 있어 제수가 성글면 맹호가 폐단을 일으키고 사특한 귀신들이 침범해 괴변이 잦다”는 명분으로 요청하니, 현감이 “특별히 허락하니 지성으로 제사를 지내 명을 보전할 것”이라고 했다. 원보영 연구교수(민속학)는 “제도와 실행의 간격 속에 ‘명분’이나 ‘마을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 문화의 한 자락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문서에는 자식을 사고파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한 양인 부인이 1886년에 작성한 문서는 “남편이 죽고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 8세인 딸 점순과 이 집에서 얻어먹고 살아온 관계로 8냥의 가격에 (딸을) 영영 방매하니 후일 문제를 삼을 경우 이 문서를 올려 관에 고해 증빙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연구원은 7만여 점의 문서 중 61점을 간추려 그 뜻을 풀이한 ‘고문서로 읽는 영남의 미시세계’를 지난해 출간했다.
영남 지역 71개 군현에서 작성한 중기(重記)도 ‘영남지역 생활사 자료집성-중기 I, Ⅱ’로 엮어 최근 발간했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문헌정보학)는 “사무 인계로 작성된 문서여서 관아의 노비 수, 요강과 자물쇠·열쇠의 개수까지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고문서를 바탕으로 관료 선비 향리 민중 여성 등 계층별 생활사를 복원하는 연구를 인문한국(HK) 사업으로 2016년까지 진행한다. 고문서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사 연구 기반 자료는 올해 안에 ‘생활사 디지털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정병호 경북대 교수(한문학)는 “올해 안에 생활사로 재현한 조선 후기 관료들의 생활을 내놓을 것”이라며 “당시 관료들은 공금으로 개인문집을 발간하기도 하는 등 근대의 기준으로 보면 불합리한 태도를 가졌지만 이를 그대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문화연구원이 충북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복원 중인 금속활자 제조과정. 사진 제공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은 금속활자인쇄술 복원 사업과 종가 연구, 시민 강좌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충북 청주의 고인쇄박물관과 금속활자인쇄술 복원을 연구하는 남 교수는 세종 16년(1434년)에 만들어져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된 갑인자 계열 6종 및 한글 금속활자 4종 등 총 30종의 조선왕실 활자를 복원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인쇄를 할 때 먹에 막걸리를 부어 사용했다’는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막걸리의 전분 성분이 탄소가 많은 먹을 금속에 고르게 퍼지게 한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생활사 연구를 하며 ‘특정 의도’를 가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들은 ‘고문서로 읽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문서들에 담긴 음성이, 전체 역사의 구도를 위해 예비되었던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였다…현실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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