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막내딸 기구한 삶에 끌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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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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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1위 소설
‘덕혜옹주’ 저자 권비영 씨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을 제치고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이 있다. 고종 황제의 막내딸인 덕혜옹주(사진)의 삶을 그린 역사소설 ‘덕혜옹주’다. 옹주는 왕이 후궁에게서 얻은 딸을 일컫는다. 출판사인 다산책방 측은 지난해 12월 말 책이 나온 뒤 3일까지 약 13만9000부가 나갔다고 밝혔다.

이 책을 쓴 권비영 씨(55)는 1995년 월간문학이 주관하는 신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2005년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를 낸 소설가. 그러나 스스로도 “무명의 작가”라고 말할 정도로 생소한 인물이다. 현재 울산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3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의 이름 없는 작가가 쓴 소설이었기에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

권 씨는 ‘덕혜옹주’가 독자의 관심을 받는 이유로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면 고종에 대해서도 무능한 군주가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재조명하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죠. 이런 분위기 덕분에 제 소설도 덩달아 관심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사진 제공 다산책방
사진 제공 다산책방
덕혜옹주는 고종 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일본 쓰시마 섬 영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로 결혼했다가 끝내 정신병원에 15년간이나 입원했다. 이런 비극적 삶이 갖는 호소력도 소설 ‘덕혜옹주’의 매력이다. 권 씨는 “독자들 중에 특히 여성이 많고, 주로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는 감상이 많다”며 “시대적 희생양이었던 덕혜옹주의 삶은 구한말과 한일강제병합 이후 조선의 역사, 조선인의 삶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권 씨는 3년 전 고종황제에 관한 신문 기사에서 덕혜옹주의 사진을 보며 옹주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사진을 보고 한눈에 끌렸다”는 그는 기사를 본 직후 우연히 쓰시마를 여행했다. 그곳에서 덕혜옹주와 다케유키의 결혼기념봉축비 등 관련 유적을 본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소설을 준비했다. 자료 수집에 1년, 집필에 다시 1년이 걸렸다. 그는 쓰시마를 두 차례 더 여행하기도 했다.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졌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이었죠. 일본 학자 혼마 야스코 씨의 ‘덕혜희(姬·히메·왕녀라는 뜻의 일본어)-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를 읽으며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권 씨는 “우리는 잘 몰랐던 덕혜옹주의 삶을 사료에 기초해서 상세히 밝혀낸 그 책을 읽으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2008년 ‘덕혜옹주’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기존에 알려진 덕혜옹주의 삶과 소설 ‘덕혜옹주’의 가장 다른 점은 덕혜옹주의 남편을 ‘부인을 이해하려 했으나 결국 좌절한 인물’로 그렸다는 점. 권 씨는 “1996년 광복절 특집 드라마 등에서 덕혜옹주의 남편이 꼽추이거나 포악한 인물이라고 그렸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그는 오히려 영문학자이자 시인, 화가로 상당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 그가 직접 지은 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쁜 인물이었다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런 면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도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하면서 과거를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동영상 = 덕수궁 석조전 고종황제 처소 완전 복원

:권비영 씨는:
55세. 1995년 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와 월간문학이 주관하는 신라문학상 소설부문에 단편 ‘무채색의 허기증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21세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창작활동을 해오다 2005년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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