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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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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장성일(50·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1동) 씨는 오전 내내 위장텐트를 치고 참새 종류의 하나인 ‘밀화부리’를 기다렸다. 4시간을 기다렸지만 결국 찍지 못했다. 허탕이었다. 밀화부리가 좋아하는 나무 열매가 없다 보니 새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사진 찍기가 취미였던 장 씨는 1년 반 전부터 새 사진 찍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강성심병원 방사선사로 일하는 그는 근무가 없는 날이면 전국을 돌며 새 사진을 찍는다. 그는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새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 씨는 “새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날 때는 마치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흥분된다”며 “허탕 치는 날도 많지만 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해 ‘찰칵’
5년째 조류에 심취한 이용길(64·충북 진천군) 씨는 “자연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때가 되면 되돌아오지만 새는 그렇지 않다”며 “새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인내심, 미적 감각, 조류에 대한 지식이 전반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새의 모습을 찍기 위해 한 달 동안 기다린 적도 있지만 결국 찍지 못했다.
장 씨는 올여름 경기 시흥시의 한 저수지에서 물총새를 찍기 위해 뙤약볕 아래 텐트를 치고 10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물총새를 찍었다.
장 씨는 물총새를 발견하고 셔터를 누른 순간을 “낚시꾼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다 월척을 낚았을 때의 기분과 같다”고 표현했다.
“사진에 찍힌 아름다운 새의 모습을 보면 찍기 전에 한 고생은 다 잊어버립니다. 사진을 찍은 날에는 흥분 때문에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 이동경로 예측하며 셔터를 누른다
새는 대부분의 시간을 움직이거나 날아다니는데, 무척 빠르게 이동한다. 나는 새는 먹이를 찾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데 그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8년 동안 조류 사진을 찍어온 조규택(52·교사·인천 남동구 논현동) 씨는 “감각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며 “새 사진은 앉아 있는 장면, 둥지에서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 열매를 먹는 장면, 먹이를 잡는 장면 등이 있는데 둥지에서 먹이를 주는 장면을 찍는 것이 가장 쉬운 편”이라고 말했다.
새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찍는다고 잘 찍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가까이 대고 찍는 사진은 백과사전이나 도감 사진처럼 되기 쉽다. 새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하려면 구도나 여백을 생각해야 한다.
이 씨는 “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말했다.
조류 사진 베테랑들은 ‘비행샷’을 주로 찍는다. 날아다니는 새를 찍는 것이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 중 하나로 꼽힌다.
장 씨는 “정확한 비행샷을 찍으려면 피사체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감각적인 장면을 포착해 셔터를 눌러야 하는데 이는 경험이 많아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새는 큰 나무를 좋아한다
초보 조류 사진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장소 선정이다.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가 새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새가 휴식을 취하는 나무 부근은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다. 주위 나무들에 비해 월등히 키가 큰 나무가 있다면 새가 날아올 확률은 높아진다.
조류 사진가들은 마지막 방법으로 먹이로 새를 유인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특정 장소에 새가 좋아하는 땅콩 등을 뿌려놓고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장 씨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廢家)를 자주 찾는다. 특히 마당에 감나무, 대추나무 등 새가 좋아하는 열매나무가 있다면 새가 있거나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친구와 가족들은 으스스한 폐가를 찾아다니는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그곳에서 새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습니다.”
▼새 시력 사람의 8∼40배… 위장복 필수▼
조류사진 기본 장비값만 300만원
새는 날아가 버리기 쉬운 만큼 위장복과 위장텐트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멀리 있는 새를 찍으려면 망원렌즈 등이 달린 카메라도 필요하다. 최소한의 장비를 갖추려면 300만 원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조류는 사람보다 시력이 8∼40배 좋다고 알려져 있다. 새들의 눈을 속이고 좀 더 가까이 접근해서 사진을 찍으려면 위장복이 필요하다.
새는 파랑 빨강 등의 원색에 민감하다. 나무 색깔과 비슷한 군복이나 어두운 색상의 옷을 위장복으로 입어야 새들이 덜 놀란다.
위장텐트도 필수다. 7∼10시간씩 잠복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두운 색상의 텐트를 마련한다.
카메라 본체에 해당하는 보디는 일반 자동카메라보다는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일안 반사식(SLR) 기종의 카메라가 좋다. 특히 연사 속도와 AF가 빠르면 움직이는 새를 더 정밀하게 촬영하는 데 유리하다.
조류사진가 장성일 씨는 “연속적으로 찍을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카메라라면 최소한 초당 8장 정도는 나오는 카메라여야 한다”고 말했다.
렌즈는 최대 600mm의 장망원렌즈일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일반 200mm 정도의 렌즈에 컨버터(확대경)를 장착하면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렌즈는 백통, 흑통 등이 많은데 렌즈 주위를 위장 천으로 감아주면 렌즈 보호와 위장 효과가 있다.
조류 사진을 찍을 때는 삼각대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스트로보(플래시)는 날씨가 흐리거나 나뭇잎으로 그늘이 질 때 간혹 사용하기도 하지만 필수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새는 멀리 있어 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조류 사진을 찍을 때는 차량을 이용하기도 한다.
조류 사진가 조규택 씨는 “새들은 움직이는 차량은 별로 경계하지 않지만 움직이다 갑자기 멈추면 날아가 버린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