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3년 경제학자 파레토 사망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백화점 매출액의 80%는 20%의 단골손님에서 나온다.” “회사 전체 실적 중 80%는 20%의 우수 인재가 올린다.” ‘20 대 8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파레토 법칙’은 이렇게 현대 경영학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는 혁명의 해였던 1848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해 프랑스에서는 루이 필리프 정권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선포됐으며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3월 혁명으로 재상 클레멘스 메테르니히가 실각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파레토의 할아버지는 나폴레옹에게 협력한 공로로 후작 작위를 받았지만 정국이 혼란스러워지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파레토는 11세 때 복권된 아버지, 프랑스인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가 토리노의 기술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철도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1880년대에 아버지, 어머니가 잇따라 타계한 뒤 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41세 때 일을 그만두고 12세 연하의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면서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한계효용이론을 고안해 ‘근대 경제학의 시조’로 불리는 로렌초 발라의 뒤를 이어 45세 때 스위스 로잔대의 경제학 교수로 취임했다.

그는 ‘가장 바람직하게 자원이 배분되는 상황’이라는 완전경쟁의 개념을 발전시켜 ‘모든 개인의 만족도를 조금도 더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파레토 최적’ 개념을 고안했다.

소득 분포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 사회든 전체 부의 80%는 20%가 소유한다’는 유명한 연구는 통계 분석을 통해 나왔다. 일설(一說)에 따르면 파레토는 2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80%는 노는 일개미들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선동, 금권 정치가 횡행하는 대중 민주주의를 혐오한 그는 만년에 엘리트의 지배를 지지했다. 이 때문에 파레토의 강의에 등록했던 것을 근거로 ‘파레토의 제자’를 자처했던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주창하는 데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첫 번째 아내가 요리사와 도주한 뒤 동거하던 40세 연하의 여인과 임종을 앞두고 결혼했다. 1923년 8월 19일 75세로 숨진 그는 스위스 제네바의 호반 마을인 셀리니에 묻혔다.

파레토 법칙은 최근 인터넷 시대를 맞아 도전을 맞고 있다.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흥행성이 없는 80%의 책 매출이 잘 팔리는 책 20%의 매출을 추월한 것을 근거로 고안된 ‘롱테일(long tail) 법칙’이 바로 그것. 미국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만든 이 법칙은 ‘역(逆)파레토 법칙’이라 불린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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