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7>자전거 여행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자전거 여행/김훈 지음/생각의 나무

《“봄의 흙은 헐겁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있고, 봄볕 스미는 밭들의 이 붉은색은 남도의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다.”》

두 바퀴에 담아온 이 땅의 풍경… 삶

작가는 “자전거를 저어간다”고 했다. 노 젓듯 앞으로 나아가며 살고 죽은 것이 몸 안으로 흘러왔다가 몸 밖으로 흘러간다는 그의 표현이 신선하다.

작가는 나아감과 멈춤을 반복한 끝에 몸과 길이 엔진을 매개하지 않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났고 몸과 자전거 기어가 하나가 됐다.

그렇게 전남 담양군 소쇄원, 전남 순천시 선암사,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경북 영주시 부석사, 진도대교, 전남 섬진강, 서울을 누볐다. 기나긴 여행 끝에 작가는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 길에서 정확히 비기고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의 과정 동안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봤으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표현한다.

남해안의 해안선 경작지를 보고 작가는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다”고 했다. “기하학적 선을 따르지 않고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의 인체공학 리듬을 따른 구불구불 밭두렁”이 작가의 마음을 따사롭게 한다. 땅속에 언 물기가 서리가 돼 땅 위에 맺힌 광경을 본 작가의 말이 일품이다. “봄 서리는 초본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이순신의 전라 우수영과 삼별초 항쟁의 대표적 유적지 용정산성이 있는 진도. 무인들의 삶과 죽음이 명멸한 이곳으로 가는 진도대교 아래 바다를 보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겨울 들판을 건너가는 눈보라 소리를 내고 흰 갈기를 휘날리는 물살은 출정하는 군마처럼 우우 함성을 지르며 명량해협을 빠져나가 목포 쪽으로 달려간다.”

‘칼의 노래’가 나온 것이 2001년이고 이 책은 2000년 펴냈으니 이 무렵 ‘칼의 노래’ 구상의 흔적이 보인다. 작가는 충남 아산 현충사 소장 이순신의 칼에 적혀 있는 검명(劍名)을 떠올린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는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쪽 바다의 적을 피로 물들이고(染) 싶은” 삼엄하고도 고독한 무인 이순신의 내면은 소설 ‘칼의 노래’에 그대로 재현된다.

경북 영주시 부석사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고단한 삶을 만났다. 고추 값이 너무 싸 품삯 댈 길 없어 고추를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 “더 말라비틀어지면 걷어내서 군불이나 때야겠다”는 농부가 진 지게 짐은 농부 키보다 높다.

작가는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 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인지 부도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기나긴 오르막길 끝에 저녁 무렵 당도한 부석사에서는 절을 세운 의상과 그를 사모한 중국 여인 선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의상이 선묘의 사랑을 거부하자 선묘는 바다에 빠져 죽었고 용이 돼 무량수전 땅속에서 부석사를 지키고 있다는 전설. 작가는 “살아서 밥상을 차리고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죽어서 용이 돼 아득히 높은 애인의 절을 지키는 선묘의 넋이 가엾다”며 상념에 잠긴다.

여행 작가 김완준 씨는 “역사의 현장에서부터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땅 구석구석을 실핏줄처럼 누비면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풍경까지 포착해내려고 애썼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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