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세상]일상과 예술 경계 지우기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5분


스러져가는 시골 창고 속에서

잃어버린 소통의 미학 되찾다

《지붕에 난 창으로 푸른 하늘이

뺨을 들이민다. 높다란 벽 위쪽

창을 통해 부서져 내린 햇살이

물결치는 무늬를 그려낸다.

얼기설기 가로질러 둔 듯한

나무 들보와 묵직한 철문은

소박하고 정겹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488.

‘내촌 농협 창고’라는 글씨가

외벽에 오롯이 남아있는

건물의 요즘 이름은

‘아트플레이스 내촌창고’다.

30여 년 묵은 세월의 더께를

배경으로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이곳에서

‘대다 TOUCH’전이

22일까지 열린다. 》

도시의 되바라진 구석이라곤 없는 투박한 공간에 화가 서용선, 오원배, 배석빈, 허윤희 씨, 올레 슈워츠의 작업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어떤 세련된 전시공간에서도 만나기 힘든 깊은 울림을 준다. 가로, 세로 4m가 넘는 서용선의 ‘동도에서 본 서도’를 위시해 개성 넘치는 대작들이 튀지 않고 화음을 이뤄내는 것도 무위의 공간이 받쳐주는 후광 덕이리라.

몇 발자국 아래 또 하나의 내촌창고가 있는데, 삐걱거리는 초록 대문 주변에 금낭화와 질경이가 지천이다. 시간의 무게로 기우뚱 서있는 건물에서는 디자이너 서명자 씨가 지은 옷들을 선보인다. 흙벽이 떨어져나간 틈새로 수숫대가 내다보이고, 구경 온 양 창틀 사이로 숨어들어온 푸른 잎새들이 의젓하게 작품 행세를 하는 곳. 오랜 세월 정든 것들을 내치지 않고 품어온 곡물창고의 웅숭깊은 멋은 세계적 미술관의 화려함이 전혀 부럽지 않다.

허물어져가는 두 창고를 철거 직전 사들여 전시공간으로 만든 이는 이곳 내촌목공소의 주인 이정섭(37) 씨.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한옥 짓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여기서 가구를 만들고 있다. 40∼50년 전 주거형태와 거리가 잘 보존된 조용한 시골마을이 자고 나면 모습이 바뀌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젊은 목수는 노후한 건물을 보존해 예술 공간으로 살려보려는 문화운동을 시작한다. 그의 대학 스승인 서용선 씨 등 여러 사람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작가들에게 다양한 공간을 체험하게 해보자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탰다. 주민들의 땀과 눈물이 밴 창고를 지난해 6월 전시장으로 개관한 것이 그 첫 결실.

“배고픈 보릿고개 역사를 우리 세대에서 마감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30년 뒤인 오늘 살을 빼느라고 굶는 사람은 있어도 먹을거리가 없어 굶는 사람은 없다. 육신의 굶주림은 극복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마을 초대 농협조합장을 지낸 어르신의 말씀은 그날 개관 행사에 모인 예술가들을 숙연하게 했다고 한다. “나는 예술을 모른다. 다만 육신의 양식이 곡식이라면 우리 영혼의 양식은 예술의 한 부분이 아니냐, 그렇게 이해를 한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우리 영혼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일을 시작하는 그 소망이 막힘없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미술을 자본의 논리로 저울질하는 세상에서 예술가들이 편안한 반경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또 있다. ‘2008 홍제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8일까지 서울 내부순환도로의 교각이 가로지르는 홍제천변 산책로(홍제초교 앞)에서 펼쳐진다. 삭막한 도시에 미술이 개입해 사람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는 관청의 기금지원 없이, 재료비에도 못 미치는 대가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한 20여 명의 작가와 개인후원금으로 이뤄졌다. 미술연구소를 운영하는 쿤스트독이 ‘도시얼굴만들기’란 제목으로 작년에 이어 1.2km 산책로를 따라 컨테이너 미술관과 다양한 작품을 배치했다. “거대한 교각은 심리적 위압감을 준다. 주요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이 상충되는 장소에 사람과 자연의 통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관람객들의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 ‘예술의 능동적 소통’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다.”(홍순환 디렉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미술의 몸짓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말했다. “사람들을 무엇인가에 가깝게 하는 것이 예술가가 추구하는 바다. 공유(共有)야말로 예술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경험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고서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늘 궁리한다. 어떻게 하면 거리감을 제거해 우리 모두가 더 가까워지고, 서로가 동일하고 하나임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될지를.”

살아있는 모든 존재와의 소통과 공존을 위해 가슴을 열 이유가 어디 예술가에게만 있겠는가.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해야 할 이유 역시나.

‘세찬 바람에 끄떡없는 팽나무도, 숲에 사는 벌레들도, 농사일에 지친 작은아버지 한숨소리도, (…) 내게 기쁨을 준 사람들과 슬픔을 준 사람들도, 내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든 나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모두 다, 내게 영향을 끼쳤으므로.’(서정홍의 ‘언제부턴지’)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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