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밤 10시…붉은 태양 아래 그들은 그린에 선다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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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발명품의 절반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데 대표적인 예가 골프와 위스키다. 골프는 스코틀랜드 목동들의 돌멩이 놀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위스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골프백에 주머니가 많은 이유를 물어보면 스코틀랜드인들은 농반 진반으로 ‘위스키병 보관용’이라고 말한다. 위스키와 골프를 찾아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다녀왔다.

○ 몰트위스키를 찾아 떠난 스코틀랜드

‘스카치’는 스코틀랜드 사람을 뜻하는 단어지만 스코틀랜드산 위스키란 말로 더 많이 쓰인다. 차이나(china)가 ‘도자기’, 재팬(japan)이 ‘옻칠’이라는 일반명사로 쓰이는 것처럼.

그러니 스코틀랜드 여행길에 스카치 한두 잔 마시는 것과 위스키 공장 방문은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의 위스키 박물관(공식명칭은 ‘The Scotch Whisky Experience’)에서는 위스키의 제조과정을 상세히 볼 수 있다.

위스키는 맥아 혹은 기타 곡류를 발효시킨 1차주를 증류시킨 다음 나무통에 넣어 숙성시켜 마시는 술이다. 주정의 원료(보리 귀리 밀 등)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스코틀랜드는 몰트(Malt 맥아)를 특히 앞세운다. 맥아를 주정의 원료로 쓴 몰트위스키는 향과 맛이 깊고 짙은 것이 특징.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투어의 백미는 역시 시음코너다. 100여 가지 스카치 위스키가 진열돼 있어 시음도 하고 살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가 발달한 것은 기후와 지형 덕분이다. 동북부의 스페이사이드는 위스키용 보리의 주 생산지여서 위스키 증류소도 무척 많다. 이런 위스키 증류소에 가면 발효→증류→숙성→블렌딩에 이르는 생산설비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 북부와 북서부의 하이랜드(고지대)에 증류소가 많다.

스페이사이드의 간판격인 업체는 세계 최대의 몰트위스키 브랜드인 ‘글렌피딕’의 위스키 원액생산공장인 글렌피딕 증류소. 가볍게 둘러보는 투어는 무료지만 2시간 30분 이상 걸려 시음까지 하는 심층관광은 20파운드(약 3만8000원)를 받는다. 물론 18세 이상 성인만 낸다. 보통 다른 증류소들은 무료이거나 2.5∼5파운드(성인 기준)를 받는다. 청소년은 어른과 함께 들어갈 수 있지만 8세 미만은 생산시설에는 입장 불가.

스페이사이드 근방의 인버네스는 특히 한국인의 관심을 끈다. 국내에서 위스키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발렌타인’의 에든버기 증류소가 있기 때문. 하지만 이곳은 VIP고객과 바이어가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에든버기 증류소에서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맛과 향이 각기 다른 7가지의 위스키 원액을 혼합해 발렌타인 17년산을 만드는 것이었다. 증류소 고객 센터의 지하창고는 발렌타인 30년산의 원액이 보관된 오크통으로 그득했다. 위스키의 맛과 향은 블렌딩(blending·여러 곳에서 생산된 원액을 혼합해 특정한 맛을 내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180년 발렌타인 역사에서 마스터 블렌더(블렌딩 책임자)는 모두 5명뿐이었다.

그날은 기자에게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오크통에서 막 퍼 올린 발렌타인 30년산 원액을 혀끝으로 음미해본 것이다. 그것도 발렌타인사의 제5대 마스터 블렌더인 샌디 히슬롭 씨에게서 직접 받았다. 그가 오크통 마개를 여는 순간 풍겨나온 깊은 향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증류소가 있는 인버네스는 괴물 출몰로 이름난 네스 호(湖)의 북단에 있다.

○ 오후 2시 30분에 36홀 티업하는 백야 골프

골프가 탄생한 스코틀랜드에서의 라운딩은 골퍼들에게 뜻 깊은 경험이다. 그중에서도 한여름 스코틀랜드의 백야(白夜)골프는 평생에 한 번은 해봐야 할 일로 꼽힌다.

백야는 지구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해가 길어 거의 온종일 대낮처럼 밝은 현상을 말한다. 어느 정도일까. 골퍼에게는 티업시간을 기준으로 설명해야 이해가 빠를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오후 2시 30분에 티업을 해도 36홀을 돌 수 있을 정도다. 오후11시가 넘어야 해가 지니까.

스코틀랜드의 ‘백야 골프’ 시즌은 하지(6월 21일경)부터다. 이 시즌에는 저녁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이웃과 팀을 이뤄 느긋하게 골프장을 찾는다. 라운딩을 즐긴 뒤 자정경에 맥주 한잔으로 피로를 푸는 여유가 부럽기만 했다.

지난 6월에는 진로발렌타인스㈜(대표 장-크리스토퍼 쿠튜어)가 주최한 한국-스코틀랜드 간 친선백야골프대회가 오크니 섬의 스트롬니스 골프장에서 열렸다. 참가선수는 프로골퍼 신용진(43) 김대섭(26) 씨와 스코틀랜드 골프영웅 샌디 라일(49) 딘 로퍼트슨(37) 씨. 2명이 한 조를 이뤄 홀당 승부만 기록하는 업다운 방식으로 겨뤘다.

바다 건너편에 우뚝 솟은 무인도의 절경과 이따금 해협을 지나가는 요트의 자태가 돋보이는 해변 골프장에서 이뤄진 이 ‘한밤’의 승부. 여독 때문인지 한국팀의 석패였다.

임페리얼을 비롯해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등을 판매하는 진로발렌타인스㈜는 세계적인 주류 메이커 페르노리카그룹이 ㈜진로와 합작해 설립한 주류회사로 지난해 국내 위스키 시장의 37%를 차지했다.

○ 유령 이야기도 들리는 고성호텔 체험

고성체험을 위해 찾은 곳은 섀핀세이 섬에 있는 밸푸어성 호텔이었다. 이 섬은 북부의 오크니 제도에 있는 20개 유인도 중 하나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은 오크니섬의 커크월 공항에서 택시로 7분 거리에 있는 항구다. 30분 가량 뱃길을 따라가는 동안 주변에 펼쳐진 바다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성을 세운 사람은 오크니의 대지주 데이비드 밸푸어.

성 앞뜰은 온통 유채꽃 천지였다. 뒤편에는 산책로가 있는데 아침이면 새들의 노랫소리로 뒤덮인다. 기록에 따르면 밸푸어 가문은 1960년에 대가 끊기고 성은 폴란드 출신의 타데스 자와드스키에게 팔렸다. 자와드스키는 폐허로 변한 성을 정성껏 수리해 지금의 호텔로 바꾸었다.

호텔 실내는 역사 그 자체다. 벽에는 밸푸어 가문의 초상화, 응접실과 복도에는 녹이 슨 검과 도자기, 고서가 가득하다. 호텔 운영을 맡은 패트리셔 리더데일이라는 아가씨와 벽난로 지펴진 거실의 소파에 몸을 파묻고 발렌타인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령 이야기도 함께….

늦은 밤 4층 객실로 오르는 계단의 삐꺽거리는 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누군가 꺼낸 고성의 유령 얘기 때문이었다.스코틀랜드=최영훈 기자 tao4@donga.com

◇찾아가기

스코틀랜드는 영국(그레이트브리튼왕국)을 구성하는 네 지역(웨일스 북아일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중 하나.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북쪽 3분의 1을 차지한다. 수도 에든버러는 런던에서 기차로 4시간 소요. ‘하이랜드’는 북쪽 산악지방의 고지대를 말한다. ▽위스키체험=스코틀랜드 위스키 공식 사이트 ‘The Scotch Whisky Experience’(www.whisky-heritage.co.uk)에 상세 정보. 위스키박물관은 에든버러성 앞. ▽밸푸어성호텔(www.balfourcastle.com)=1박 2식(조·석식)에 100∼120파운드(1파운드는 약 1900원). 어린이는 30%, 사흘 이상 묵을 경우 10% 할인. 현지전화 01856711283 ▽관광청 △영국=www.visitbritain.co.kr(한글) △스코틀랜드=www.visitscotland.com(영어) △에든버러=www.edinburgh.org ▽진로발렌타인스㈜=www.jinroballant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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