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이야기하다]‘과열 사회’ 아우를 인물 보고싶다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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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는 때입니다.” 고은 시인(왼쪽)과 최정호 본보 객원대기자가 서울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훈구 기자
“새해는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는 때입니다.” 고은 시인(왼쪽)과 최정호 본보 객원대기자가 서울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훈구 기자
《2007년 새해. 정월 초하루엔 누구나 새로운 꿈을 꾼다. 개인들의 소박한 꿈에서 대권주자들의 욕망, 세계와 우주로 향한 대망(大望)까지…. 서로 다른 꿈들이 갈등 속에서 부딪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희망의 탑으로 세워 나갈 지혜가 필요한 때다. 동아일보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느 해보다 이념, 계층, 세대 간 긴장의 파고가 높을 우리 사회에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신년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해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 시인과 최정호(울산대 석좌교수) 동아일보 객원대기자(大記者)가 세밑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신년대담을 가졌다. 1933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겪어 온 소회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치유, 미래를 향한 통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정호=우리가 살아온 70여 년의 세월은 일본이나 소련 같은 대제국이 흥망한 역사 시간과 맞먹습니다. 우리는 이 제국들의 몰락을 경험했습니다. 참 긴 세월을 산 셈이지요.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고 해방 후에는 동족전쟁을 치르면서 제3세계, 제2세계(북한), 제1세계를 두루 겪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아침에 좀 더 큰 역사적 전망에서 앞날을 생각해 보고 싶군요.

▽고은=올해는 돼지해입니다. 동북아시아 몇 나라에서는 ‘황금 돼지해’라 해서 여느 돼지해와는 다른 기대로 부풀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새해를 정월(正月)이라 합니다. 이는 맞고 틀리다는 뜻이 아니라 ‘영(零)’이나 ‘처음’을 뜻합니다. 제로에서 시작해 바른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지요. 서양에서의 1월(January)은 ‘야누스(두 개의 머리)’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바라보는 때란 뜻이지요. 결국 새해는 영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입니다.

▽최=20세기 전반기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 못한 수난의 시기였습니다. 한국의 ‘미래시간’은 6·25전쟁이 끝난 20세기 후반에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제로 포인트가 아니라 국권상실과 동족전쟁이란 마이너스 포인트에서 출발했지요. 그런데도 불과 50년 안에 국토의 녹화혁명, 산업화혁명, 민주화혁명을 이뤄 냈습니다. 우리 세대도 이젠 떳떳하게 ‘20세기는 한국의 대(大)시대였다’고 말해 좋을 줄 압니다.

미래가 자유의 영역이라면 과거는 사실의 영역입니다. 미래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과거는 신(神)조차도 취소 못한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선 여러 대안을 놓고 다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평가에는 ‘공동의 기억’을 위한 합의가 요망됩니다. 요새 과거사 논의로 시끄러우나 궁극적으론 더 큰 역사적 합의를 위한 진통이었으면 합니다.

▽고=저는 갈등도 생(生)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건전한 사회도 갈등을 기초로 서 있지요. 너와 나는 눈 감고 뽀뽀하는 행복한 관계이기보다는 서로 으르렁거리고 어긋나기도 하면서 함께 진화해 가는 것이지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갈등이 없는 사회이고, 가장 엉터리 이론은 무갈등 이론입니다. 다만 갈등이 악화돼 더 많은 갈등을 파생시키는 질병으로서의 사회갈등은 장기간의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대사회는 정치적 이념적 다원주의에 입각해 있습니다. 의견과 이해관계의 분열, 갈등이 있기 마련이지요. 조선시대는 요즈음도 어디선가 떠드는 ‘유일사상’의 체제였습니다. 주자학만 옳고 다른 사상은 배척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시대였습니다. 한국의 성취가 자랑스러운 것은 의견대립과 이해대립의 갈등을 안고서도 이룩해 냈기 때문입니다. 나는 1990년대 이후 겪고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갈등’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렵니다. 그로 해서 민주주의와 이념공간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지고, 다원주의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리라 기대되기 때문이지요.

▽고=우리의 이념갈등은 유서가 깊습니다. 단재 신채호는 우리는 불교를 받아들이면 불교의 노예가 되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유교의 조선이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의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조선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16세기에 들여온 고추도 고춧가루 고추장을 만들어 마치 없으면 신체의 생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양 자신의 것으로 극단화시켰습니다. 한국은 늘 매워야 하고 뜨거워야 합니다. 극단의 열정과 배타심리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에너지들이 난숙기에 접어들어 다른 문화의 체질로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이념갈등은 일단 분단시대의 현주소이며, 통일시대에나 승화될 가능성을 보여 줄 것입니다. 갈등이라는 것도 생명현상이므로 인위적인 처방보다는 시간이라는 자연 속에 풀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시간은 살아 있는 기운입니다. 이 기운의 과정 속에서 발효될 것은 발효되어야 초가 되든 술이 되든 할 것입니다.

▽최=올해 2007년은 ‘결정의 해’입니다. 지난 연대 동안 우리는 ‘정치가 공동체의 운명’임을 체감했습니다. 게다가 최고 통치자의 품성, 능력이 국운을 좌우하는 대통령 책임제하에서는 ‘대선’의 의미가 막중할 수밖에 없지요. 현대의 선거전은 마치 총력전, 심리전이라는 현대전쟁의 성격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총체적 미디어의 동원으로 사활을 걸고 치르는 대선 과정에서 나라에 어떤 미래가 열릴지는 국민 저마다의 한 표로 결정됩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것은 민주화가 쟁취한 귀중한 권리이자 동시에 힘겨운 의무입니다. 대통령을 뽑은 책임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의 수준이 대통령의 수준을 결정하는 거지요. 한번 잘못 표를 찍으면 실러의 말처럼 “홀린 것은 잠깐, 뉘우침은 두고두고”라고 넋두리해도 무슨 소용이겠어요.

▽고=올해는 웬만한 구호는 대선 정치에 거의 다 파묻혀 버릴 것입니다. 이런 비등점이 넘은 과열의 사회에 대해서 지식인의 대안 담론이 얼마나 실효성을 살릴 수 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때는 정치의 그 맹목적인 본능을 그 본능 자체로 처리하는 게 지혜일지 모릅니다. 다만 다음 대통령은 총합적이고 복합적인 대승정치를 할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말하자면 우파다 좌파다를 단정 지어 버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분단시대 후기, 통일 과정에 진입한 시기의 정치에 부합하는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이승만이다, 박정희다, 김영삼이다, 김대중이다가 아니라 이런 역대 대통령이 남긴 정치 유산을 하나로 아우르는 ‘강의 하류’ 같은 인물 말입니다. 이게 백일몽일까요.

▽최=통일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땅만 찾고 사람은 무시한다는 답답함을 느껴요. 국토만이 아니라 사람도, 민족도 갈라졌어요. 그런데도 이승만 대통령은 ‘실지(잃어버린 땅) 회복’을 위해 북진 통일을 외쳤고 김일성은 ‘(국토의) 남반부 해방’을 위해 남침전쟁을 도발했습니다. 정부의 통일 관련 부서도 수십 년을 ‘국토’통일원이라 일컬었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북정책의 성과라 크게 내세우는 것이 금강산 관광입니다. 갈라진 겨레, 이산가족의 만남보다 분단으로 못 가본 금강산 구경이 그처럼 중요한가요? 백만 명이 금강산 구경을 가면서 이산가족은 겨우 몇천 명만 오가고 했다는 건 야속한 일입니다. 경치만 구경하고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니…나는 고 선생의 ‘만인보’에도 북한 민초들의 삶이 기록되는 날을 기대합니다.

▽고=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가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북한은 본질적으로는 유격대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농성(籠城)체제’라고 봅니다. 그들은 성 안에서 자기들의 절대가치를 강조하고 지켜 나가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북한도 10년 전과 10년 이후인 지금은 현저하게 사회의 생리나 체질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통일을 일회적인 사건(점)이 아니라 긴 공간(선)으로 정의합니다. 통일은 어느 날 해치우는 혁명이 아니라 비 오고 눈이 오는 자연 질서의 긴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 과정, 그 선 자체가 우리 민족 전체의 높은 문화 척도를 달성하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최=먼저 상업적인 차원의 대중문화가 ‘한류’를 이뤄 왔습니다. 이젠 고 선생의 시 같은 문학작품, 창작음악 등도 세계에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는 21세기가 한국문화의 ‘제3의 중흥기’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지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문화가 만나 꽃피웠던 고대 아테네와 많이 닮았습니다. 다(多)종교, 다문화, 다이념이 공존하는 오늘의 한국을 볼 때마다…. 그런 가능성을 꽃피우기 위해서도 올해 대선의 해는 결정의 해, 운명의 해가 되겠습니다.

▽고=32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서사시 ‘길가메시’에는 세계의 끝에 있는 선술집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그 세계의 끝에 있는 술집에 이르자 그 집 주모가 “자, 술이나 한잔하시오. 뭘 찾으러 여기까지 왔소”라고 말합니다. 올해가 끝날 때 새해의 희망이 그 절반만이라도 공허한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눈물을 흘릴 줄 알고, 현실을 코미디나 시뮬레이션(가상현실)이 아닌 비극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은 인간에게 내일을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나와 너의 꿈은 서로 다를 수 있겠죠. 올해는 그 희망들이 상충이 아니라 상호부조적인 관계로 커 나가길 기대합니다.

정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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