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기 화성시의 한 도금업체 대표가 함께 일하던 태국인 근로자의 항문에 에어건을 쏴 중상을 입혔다. 해당 공장에서 사용 중인 에어건. JTBC 캡처
최근 경기 화성시의 한 도금업체 대표가 함께 일하던 태국인 근로자의 항문에 에어건을 발사해 중상을 입히는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대표는 “장난”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 근로자는 직장에 10cm가량의 천공이 생겨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피해자는 쉰 살. 태국에 있는 두 아이를 위해 10년 넘게 한국에서 일해온 ‘기러기 아빠’였다. 만약 그의 아이들이 한국에 함께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가 당한 인권유린을 보며 한국에 정주하려는 마음이 금세 사라져 버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그동안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않은 이유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근로자에 따르면 대표와 한국인 관리자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수시로 때리고 성추행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머무를 수는 있어도, 내 아이를 데려와 오래 살고 싶은 곳은 아니었을 거란 이야기다.
지난해 전남 나주의 한 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근로자가 짐에 묶여 지게차로 옮겨지고 있다. 동아일보DB ● 이주배경 학생 20만 명…전체의 4%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유린은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 지난해 전남 나주의 한 사업장에서는 한국인 관리자가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를 짐처럼 묶어 지게차로 들어 올리며 장난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과연 저 피해 근로자들에게 가족, 특히 자녀가 있을까’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한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었다면, 우린 피해 근로자는 물론 그 자녀 앞에서도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자녀들, 한국의 이주배경(다문화) 학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주배경 학생은 한국인과 결혼이민자 사이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성장한 ‘국내출생자녀’, 결혼이민자가 본국에서 키우다 데려온 ‘중도입국자녀’, 그리고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외국인 가정 자녀를 모두 합쳐 부른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이주배경(다문화) 학생은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학생의 약 4%에 달했다.
2019년에는 13만7225명이었지만 6년 만에 약 1.5배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외국인 입국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배경 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더욱이 전체 학령기 아동이 감소해, 그 비율이 더 빠르게 올랐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전남 6.6%·충남 6.1%…이주배경 90% 넘는 학교도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 학생 중 비율이 5%도 넘어섰다. 이주배경 학생 수 자체는 경기도가 5만6961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 2만2002명, 인천 1만5005명, 경남 1만4833명 순이었지만, 비율 순서는 상이했다.
앞서 스리랑크 출신 노동자가 지게차 유린을 당했던 전남의 경우 전체 학생 중 이주배경 학생의 비율이 6.6%, 전국을 통틀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충남 6.1%, 경북 5.5%, 충북 5.1% 차례였다. 반면 경기와 서울은 각각 3.9%, 2.9%로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주배경 학생 수와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세종특별자치시였다.
지역 평균은 1~6% 수준이지만, 일부 지역이나 학교의 경우 이주배경 학생 수가 월등히 높은 곳도 있다. 안산원곡초는 이주배경 학생의 비율이 전체 90%를 넘는다. 2024년 나온 한국교육개발원의 ‘이주민 밀집지역 소재 학교 혁신 방안’ 보고서는 당시 기준으로 이주배경 학생의 비율이 전체 학생의 80%가 넘는 학교가 전국에 4곳이라고 밝혔다.
이주배경 초등학생 인구가 전체 초등학생의 20%를 넘는 전남 함평이나 경북 영양, 전남 신안 같은 곳은 인구 감소로 전체 학생 수는 줄어드는 반면, 결혼이민 가정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비율이 높아졌다. 경기 안산이나 서울 금천·구로구는 인근 시화·반월공단 같은 공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이 모여 사는 타운이 형성됐고 자녀 진학도 늘었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전국 이주배경 학생 밀집학교가 2020년 47곳에서 2025년 123곳으로, 5년 새 2.6배 늘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외국인 가정 자녀가 한국어 수업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 뉴시스● 외국인 부모 자녀 2.9만→5.3만…1.9배 증가
이런 가운데 이주배경 학생의 증가 양상을 주목해 볼만하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이주배경 학생들 가운데서도 특히 외국인 가정 자녀’가 빠르게 늘었다. 최근 6년간 전체 이주배경 학생이 13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약 50% 증가하는 동안, 외국인 가정 자녀는 2만8536명에서 5만2876명으로 100%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 이주배경 아동이라고 하면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부모 모두 외국인인 학생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유입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고, 동시에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모 모두 한국인이 아닐 경우 언어 습득은 물론 학교 적응도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파키스탄 출신 귀화인은 파키스탄 출신인 가족이 한국 생활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아이들도 한국어가 서툰데 아내까지 한국말을 못 하다 보니 숙제조차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는 것이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이 6일 고흥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절노동자 임금 착취 의혹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고흥=뉴스1● 과연 한국은 그들이 가족과 함께 살고픈 나라인가
이미 우리 사회는 학교와 지역 곳곳에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믿기 힘든 인권유린 소식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 유입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K컬처의 영향으로 한국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을 ‘일만 하다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나라’로 느끼지 못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화성 에어건 사건의 피해자는 10년 넘게 한국에 머물렀지만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족을 데려오지 않았고, 언어에도 적응하지 못했다면 애초에 오래 정착할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살고 싶어 하는 나라, 그 기준이 결국 한 사회의 미래를 가르지 않을까. 지금의 한국은 그 기준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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