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외관, 표준화된 맛 대신 누구나 입맛 따라 뜨는 순댓국[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1일 23시 02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삼오순대국’의 순댓국. 1인분에 1만 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서울 은평구 대조동 ‘삼오순대국’의 순댓국. 1인분에 1만 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은평구 대조동 ‘삼오순대국’의 순댓국. 1인분에 1만 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서울 은평구 대조동 ‘삼오순대국’의 순댓국. 1인분에 1만 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번쩍이는 프랜차이즈 간판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밥집은 어린 시절 할머니네처럼 푸근하게 다가온다.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 대조시장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삼오순대국’ 역시 그런 집이다. 1986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정확히 개업 40년을 맞았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시간을 한자리에서 버텨낸 것 자체가 만만찮은 내공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 세월 동안 삼오순대국은 지역 주민들에게 생활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은평구 불광동과 대조동 일대는 오래전부터 서울 서북부 생활권의 중심축이었다. 시장과 주택가, 오래된 골목과 학원가가 뒤섞인 이곳에는 정주민들이 만들어낸 끈끈한 생활의 밀도가 있다. 삼오순대국은 이처럼 살아 숨 쉬는 내밀한 풍속과 함께 성장한 집이다. 문을 열면 아침 일찍 시장 상인들이 허기를 달래러 들어오고,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해장국을 먹으러 들르고, 저녁나절에는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할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삼삼오오 막걸리 한잔 곁들이려고 찾는다. 노포란 결국 그 지역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맛도 맛이지만 이 집 순댓국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푸짐함이다. 요즘 식당들처럼 보기 좋은 플레이팅이나 세련된 연출과는 거리가 있지만, 뚝배기 안에는 머릿고기와 살코기, 각종 부속이 수북하게 담겨 있다. 숟가락을 넣을 때마다 건더기가 듬뿍듬뿍 떠지는데 식객으로선 연신 마뜩할 수밖에 없다. 국물은 깔끔하면서도 깊다. 사골로 진하게 우려냈지만 탁하거나 거칠지 않고, 기본 간을 세게 하지 않아 식객들이 새우젓과 들깨, 다진 양념 등을 곁들이며 각자 취향에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식 순댓국 특유의 담백함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한 깊이를 확보한 국물이다. 오래된 단골들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메뉴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이 집은 ‘모둠고기 순대국’ ‘고기반 순대반 순대국’ ‘순대만 순대국’(이상 1만 원) ‘살코기 순대국’ ‘내장 순대국’(이상 1만1000원) 등으로 선택지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했다. 사람의 식성은 워낙 다채로워서 어떤 이는 순대를 못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살코기를 꺼릴 수 있다. 삼오순대국은 이 취향을 존중하면서 메뉴에 그대로 반영했다.

무엇보다 삼오순대국이 특별한 이유는 아직도 이 집에 사람의 온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외식업계는 빠르게 변한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표준화된 맛, 사진 찍기 좋은 음식들이 유행한다. 하지만 삼오순대국은 여전히 노동과 생활의 감수성으로 음식을 만든다. 허기를 채워 주고, 술독을 풀어 주고, 하루를 견디게 만드는 음식. 그래서 이 집 국밥에는 인생의 달고 쓰고 맵고 신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배어 있다.

대조시장 골목 특유의 눅진한 공기 속에서 뚝배기 김이 피어오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현대적 익명의 공간만은 아니라는 느낌에 젖는다. 도시는 미디어가 편집한 화면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개인의 미시적 감각과 기억으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미각을 통해 그 감각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 감각과 기억은 오래된 시장 골목 국밥집의 푸짐한 건더기와 깊은 국물 속에서 문득 선명히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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